오피니언 사설

사기에 관대한 사법 시스템을 뜯어고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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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기는 범죄다. 이 당연한 얘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이 한국이다. “속는 사람이 바보”란 말처럼 사기를 사회적 범죄로 보기보다 개인 간의 문제로 보기 일쑤다. 이러한 인식은 통계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일어난 사기사건은 24만4008건. 2분9초에 한 건씩 사기가 일어나는 셈이다. 특히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신종 수법이 등장하는 등 사기범죄가 빠르게 첨단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기사건 검거율은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 검거율(90%)에 크게 못 미치는 평균 70%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또 지난해 사기 피해 총액 8조원 가운데 회수된 범죄수익은 730억원에 불과했다.

 검거율과 범죄수익 환수율이 낮은 이유는 사기에 유독 관대한 사법 시스템에 있다. 양형 기준(기본 형량)을 보면 피해액 1억원 미만은 징역 6월~1년6월,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 1~4년,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3~6년에 그친다. 300억원 이상인 때도 6~10년이다. 이조차도 실제 재판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190만원어치를 훔친 절도 피고인에게는 징역 1년10월이, 투자금 3억원을 가로챈 사기 피고인에겐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현실은 사법기관들이 사기를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

 조희팔 사건이나 교수공제회 사건에서 보듯 사기로 재산을 잃은 피해자들은 벼랑 끝에 서게 된다. 가정파탄이 일어나고, 병을 얻고,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 같은 인식 아래 검찰·경찰은 수사력을 사기에 집중 투입하고 법원은 양형 기준을 재설정하는 등 대응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나아가 사기, 컴퓨터 이용 사기, 상습사기로 뭉뚱그릴 것이 아니라 보험 사기, 국고보조금 사기, 기업 사기 등으로 유형을 구체화해야 한다. 더욱이 피해액이 크고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해 범인을 검거함으로써 조기에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사기는 삶과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