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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은 김정은 음악정치 전위대… 우상화 신곡 쏟아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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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호 11면

‘평양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의 공연 장면.

북한 모란봉악단이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의 첫 해외공연을 불과 수시간 앞두고 돌연 평양으로 철수한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추측과 설이 난무할 뿐 어떤 것도 확실치 않다. 도대체 모란봉악단이 어떤 존재이기에 베이징 공연 취소를 두고 ‘북·중 관계 이상기류’라는 보도까지 나오게 만들었을까.


“새 시대를 선도하는 제일나팔수들” “핵무기, 수천t의 식량보다 더 위력적인 음악포성” “노동당의 친솔악단”. 북한 언론매체가 모란봉악단을 선전하는 표현들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창단됐고, 그가 직접 이름까지 지었다고 하는 모란봉악단의 위상은 이처럼 대단히 높다. 이 악단은 2012년 7월 시범공연 이후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 기념공연까지 총 22차례의 공연을 했다. 북한의 중요한 기념일에는 반드시 모란봉악단의 축하공연이 있었다. 7·27 전승절, 노동당 창건 기념일, 김정은의 군대 현지지도 시 화선공연,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 성공 축하공연, 전국예술인대회 기념공연, 전국비행사대회 축하공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정은의 부인인 이설주가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공식 발표된 것도 모란봉악단 공연 참석과 관련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19명의 여성단원으로만 구성돼 ‘평양판 걸그룹’으로 불린다. 단원들은 북한에서 음악영재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금성학원’과 ‘평양음악대학’ 출신으로 최고의 실력가들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가 수행 간부들과 함께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1 군복 차림으로 공연하는 모습.

2 배경 화면에 디즈니 캐릭터가 보인다. 3 여성 단원이 군복을 입은 채 경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정권과 함께 출범한 ‘평양판 걸그룹’ 악단 조직 및 공연 구성이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공연에서 발표되는 노래 가사, 배경화면, 공연 순서 등은 치밀하게 의도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모란봉악단을 보면 김정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매회 공연이 특정 행사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전 공연과는 다른 곡들이 주로 연주된다.


모란봉악단 공연에서 선보인 노래들은 새롭게 만들어져 처음 불린 노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노래를 편곡하고 현대식 전자악기로 새롭게 구성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모란봉악단은 기성 관례를 대담하게 깨고 새로운 음악을 구사한다.


모란봉악단 공연이 주목을 받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시작과 이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이전의 북한 공연과는 내용과 형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데뷔 무대였던 2012년 7월 시범공연은 국내외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폐쇄국가, 통제와 억압으로 상징되는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디즈니 캐릭터 인형이 공연 무대에 등장했다. ‘원쑤의 나라’로 선전하는 미국 영화 ‘록키’의 한 장면을 무대 배경에 배치하고 주제곡까지 연주했다. 지금까지 ‘제국주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단속하고 퇴폐적이고 색정적인 자본주의 날라리풍을 엄격히 통제’했던 북한으로서는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화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려한 조명, 현대식 전자악기, 여성단원들이 입은 짧은 치마와 어깨라인이 드러난 노출된 옷 등은 북한의 공연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파격적이었다. 당시 북한 언론매체는 모란봉악단의 등장을 “혜성처럼 나타나 첫 막을 올린 공연”으로 표현했고, 김정은은 “공연의 주제와 구성으로부터 편곡, 악기 편성, 연주 기법과 형상에 이르는 모든 음악요소들을 기성 관례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혁신하였다”고 평가했다. 노동신문은 “우리 당의 음악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 가는 모란봉악단이야말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 승리를 위한 대진군을 힘있게 선도해 나가는 제일나팔수다”고 극찬했다.


“강성국가 건설 선도하는 제일 나팔수”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시범공연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관심은 뜨거웠다. 스위스 유학을 경험한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개혁·개방의 의지를 보여 준 것이라는 평가와 기대가 교차했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는 거기까지였다. 이후 모란봉악단은 북한 내부에서 철저히 김정은 개인을 찬양하는 친위대로 활동하게 된다. 모란봉악단의 신곡은 ‘그이 없인 못살아’ ‘자나 깨나 원수님 생각’ ‘불타는 소원’ ‘우리의 김정은 동지’ 등 김정은 개인에 대한 찬양과 충성 맹세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김정은이 현지지도를 가면 관련된 곡들이 그다음 공연에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만경대혁명학원을 현지지도하면 ‘만경대혁명학원교가’를 부르고, 백두산을 오른 후에는 ‘가리라 백두산으로’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라는 곡들이 새롭게 창작돼 보급됐다. 결국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의 음악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최고의 선전기동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영화정치’를 했다면 아들 김정은은 ‘음악정치’를 하고있는 셈이다. 노동신문은 “부르주아적인 사상문화를 우리 내부에 퍼뜨리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비열한 책동에 맞서 공훈국가합창단과 모란봉악단을 비롯한 혁명적인 예술단체들의 장엄한 음악포성이 천지를 진감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상적 무기에 대한 언급은 노동신문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모란봉악단의 음악은 대중의 심장에 투쟁, 애국의 불을 지펴 사상적 무기가 되고” “부르주아 제국주의자들이 특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반동적이며 퇴폐적인 사상문화를 침투시켜 우리 식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기 위해 날뛰는데 모란봉악단의 음악포성은 혁명적, 전투적, 참신한 작품으로 핵폭탄보다 위험한 사상의 미사일이다.”


아울러 “모란봉악단의 노래폭탄을 통해 경제강국, 문명국 건설도 사회주의 위력, 집단주의 위력으로 본때 있게 하자”고 강조한다. 결국 모란봉악단은 북한 내부에서 사상을 강화하고 체제 결속이라는 김정은의 음악정치를 구현하는 데 가장 좋은 도구다.


노동당 70주년 때 포성 대신 ‘음악 포성’모란봉악단의 가장 최근 공연은 지난 10월 10일부터 평양에서 일주일 동안 열린 당 창건 70주년 기념공연이다. 북한은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10월의 대축전’이라 표현할 만큼 그 기념비적인 의미를 부각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열렸고 김정은은 육성연설을 통해 ‘인민 제일주의’를 강조했다. 일각에서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과 같은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북한 당국은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음악포성’이라 표현하는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수일 동안 연 것이다. 북한 당국이 대대적으로 포성을 울린 것은 미사일이 아닌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의 합동공연, 청봉악단 등의 음악포성이었다. 이 공연에서는 특히 이전과 비교할 때 김정은 개인을 찬양하는 신곡들이 대거 발표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행복 김정은 동지, 우리의 영광 김정은 동지”라는 가사가 있는 ‘우리의 김정은 동지’라는 곡은 그의 업적을 찬양하며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이외에도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로 ‘빛나라 태양의 그 이름’ ‘뵙고 싶었습니다’ ‘그리움은 나의 행복’ ‘운명의 손길’ 등이 공연됐다.


이처럼 북한 내에서 국보급 예술단체로 칭송받으며 사상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면 모란봉악단의 이번 중국 공연은 김정은의 개방적 이미지를 과시하고 북·중 간 경제 협력을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예정됐던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의 중국 공연은 단순한 음악공연단이 아닌 외교사절단의 의미로 확장된다. 김정은의 지시로 결성된 또 다른 악단인 청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이 러시아 초청공연을 했다면, 이번 중국 공연에는 모란봉악단의 첫 해외공연으로 격을 높여 준 것이다. 모란봉악단이 중국 방문을 위해 북한을 떠나던 날,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선전선동비서인 김기남과 북한 주재 중국대사 리진쥔(李進軍)의 배웅을 받으며 중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군부대 공연 땐 ‘김정은 모시듯’ 대우북한 언론매체는 “김정은 동지의 비범한 영도와 크나큰 사랑 속에 조선노동당의 친솔악단, 국보적인 예술단체로서의 영예를 높이 떨쳐가고 있는 모란봉악단”이라 표현하며 그 위상을 한껏 높였다. 북한에서 모란봉악단이 군부대 화선공연을 할 때 북한 군인들은 모란봉악단을 마치 김정은이 현지지도 온 것과 같은 수준으로 대우할 정도다. 그런 위상을 가진 모란봉악단을 중국에 보냈다면 이는 단순한 음악공연단이 아닌 북·중 관계 개선을 위한 치밀한 정치적 의도가 깃든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모란봉악단의 중국 공연을 통해 북·중 관계 정상화는 물론 경제 지원과 같은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기대치를 중국은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격을 낮추면서 결국 공연 3시간 전에 철수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의도한 북·중 관계 개선을 위한 모란봉악단의 음악포성은 이번에 울리지 못했다.


모란봉악단의 첫 해외공연이 중국이 아닌 남북한 합동공연이 되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해 본다. 모란봉악단은 세계적 추세를 강조하며 북한 노래만이 아닌 세계 명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가극극장의 유령’(오페라의 유령), 디즈니 주제곡 등이 대표적 사례다. 분단 70주년을 즈음해 통일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했던 우리의 노력은 끝내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2016년에는 모란봉악단 초청 남북한 합동공연이 통일의 포성으로 울려 퍼질 수 있을까.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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