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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가 된 천만배우 최민식…가상의 호랑이와 물고뜯는 싸움 참 괴롭더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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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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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부암동에서 만난 최민식. 그는 ‘대호’에서 구식 화승총을 쏘는 조선의 마지막 포수 천만덕으로 분했다. [사진 라희찬(STUDIO706)]

범(虎)의 기상을 닮은 조선의 마지막 포수. ‘대호’(16일 개봉)의 천만덕은 오직 최민식(53)만이 할 수 있는 역할처럼 보인다. 지리산 산군(山君)에 대적할 중량감은 물론이고, 살생의 업보를 온몸에 지고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하는 인물에 최민식을 대입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미 ‘명량’(2014)의 고뇌하는 리더, 이순신을 통과한 그는 ‘대호’에서도 영화 전체를 산군 같은 존재감으로 지배한다.

영화 ‘대호’ 주인공 천만덕 역
호랑이 모형을 김대호라 부르며
“왜 스탠바이 안 해” 말 붙이기도

 개봉을 앞두고 10일 서울 부암동에서 배우를 만났다. 이순신과 천만덕 중 누굴 더 닮았냐는 질문에 그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이제 장군님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제대한 지 꽤 됐잖아요.(웃음) 제가 어떻게 장군님과 공통분모를 찾겠어요. 평범한 민초인 천만덕 쪽이겠죠. 저도 얼굴 팔린 배우라는 직업을 빼면 똑같아요. 술 좋아하고.” 만덕은 명포수이긴 하지만 “어느 산이든 산군은 잡는 게 아니여”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호랑이 사냥 광풍 속에서 이에 동참하는 동료들과 달리 만덕은 잡을 만큼만 잡는다는 신념이 뚜렷하다. 최민식이 출연을 결정한 이유도 “이 영화가 산에 대한 예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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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에 나오는 지리산 산군, 대호는 몸길이 3m80㎝, 몸무게 400㎏을 자랑한다. 최고의 포식자답게 강한 턱, 긴 송곳니가 특징이다.

 “어머니가 불교신자였는데, 산에서는 함부로 용변을 보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자연에 예를 다했어요. 그게 한국인의 기본적인 가치관이에요. 착취와 억압의 시대로 대변되는 일제강점기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거죠. 또 요즘 시대에도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이고요.”

 그렇다고 만덕이 적극적인 항일운동에 나서는 건 아니다. 결국 총을 들고 대호를 잡으러 가지만 최민식은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이 쌓은 살생의 업보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민초들의 삶에서 독립운동은 불가능하죠. 우리의 가치를 능욕당할 수 없다는 만덕의 깨달음이 이 영화의 주제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최민식은 ‘대호’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했다. 바로 보이지 않는 실체와의 대결이었다. ‘명량’에서 실존 인물이 누르는 중량감에 허덕였다면, ‘대호’는 컴퓨터 그래픽(CG)으로 구현될 대호와의 호흡이 과제였다. “답답하고 막막하고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도망갈 구석이 없었어요.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데려올 수도 없고 머릿속으로 상상의 호랑이를 그리며 어색함을 극복할 수밖에요. ‘컷’ 하고 촬영을 멈추면 ‘어흥’하던 호랑이도 물을 먹고 쉬고 있구나 생각하는 식이었어요.”(웃음) 최민식은 호랑이 모형에 ‘김대호’라고 이름을 붙이고, “김대호 왜 스탠바이 안 해?” 말을 붙이면서 현장을 즐겼다. 대호가 날뛰며 사람들을 공격하는 장면이나, 대호와 만덕이 영적으로 교감하는 대나무 숲 장면은 그렇게 완성됐다.

 오랜만에 신작을 선보인 그에게 전작 ‘명량’의 기록적인 관객 수(1760만 명)는 부담이 되지 않을까. 그는 올해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을 받고 수상소감으로 “언제부턴가 좋은 작품보다 흥행을 따지는 자신을 발견했다”며 초심을 찾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아무리 홍보를 해도 영화가 안 좋으면 관객들이 오지 않는다. 촬영이 끝나면 우리 손을 떠난거다. 관객 수에 부화뇌동하는 것만큼 허탈하고 허망한 것이 없 다”고 했다. “영화를 만드는 재미에 취해 살아야지, 관객 수에 취해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내 자신을 (영화 자체로) 몰아가야죠. 그게 맞는 것 같아요.”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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