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하늘 가득 덮는 매화의 그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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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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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16강전 1국>
○·김지석 4단 ●·스 웨 5단

4보(36~47)=36을 본 스웨의 얼굴은 표정의 변화가 없다. 호전적인 김지석이 아니라도 이 정도 침입은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일까.

 이 장면에서 아마추어 초급자라면 냉큼 흑A로 씌워 ‘어딜 감히!’ 일갈하고 싶을 터인데 프로 아닌 아마추어 유단자만 되어도 사정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흑A 한 수로 퇴로가 봉쇄되는 것도 아니고 백B로 젖히고 나오는 약점도 있다. 그래서 프로의 결론은 37로 점잖게 지켜두고 상대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다. 일단 참아둔 다음의 흑A는 압박의 강도가 다르다. 그럼 백은?

 흑A로 덮어오면 강력한 타개의 전술을 펼치겠지만 37로 받아주었으니 체면치레는 했다. 활용한 장소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는 건 고수의 풍모가 아니다. 검토진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상변으로 향하는데 김지석은 제꺽, 38로 붙여간다. 응? 이건, 날카롭되 맑은 매화검의 초식이 아니다.

 검법이라기보다 근거리에 유력한 수공(手功) 같다. 물론 화산파에도 ‘죽엽수(竹葉手)’라는 고명한 수공이 있지만 죽엽수가 이렇게 끈끈했었나? 43, 45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46의 상쾌한 두드림은 권리. 47 다음 제일감의 한수는 ‘참고도’ 백1의 일매천망(一梅天網), 하늘 가득 덮는 매화의 그물인데….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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