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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측정기 뚝딱 만든 중1 교실 “과학자 꿈 생겼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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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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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의 풍산중 학생들이 회로기판에 마이크 센서·발광다이오드(LED)·배터리 등을 연결해 소음감지기를 만들고 있다. 소음이 정해진 기준을 넘으면 LED가 반짝거리면서 노래가 나오도록 설계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만여 명의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재와 조립 키트를 제공했다. [조문규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 풍산중학교 컴퓨터실에서 1학년 4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손바닥 크기의 회로기판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중 한 무리에서는 한 학생이 컴퓨터에 프로그램용 정보를 입력하고 다른 두 학생은 회로기판에 배터리·발광다이오드 등을 부착하느라 분주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안정진(13)군은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조용히 하라’며 혼내는 것을 보고 우리가 내는 소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소음감지기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완성된 감지기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다. 컴퓨터에 표시된 소음 측정치가 300을 넘으면서 감지기의 붉은 등에 불이 들어왔다. 안군은 “이번 학기를 거치며 과학자가 되겠다는 장래 희망이 생겼다. 수업을 통해 간단한 로봇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 참여로 달라진 진로체험
삼성전자, 교사연수·장비도 지원
로봇·게임 등 제작 실습 가능해져
NH은행은 행원역할로 금융교육
“더 다양한 체험활동 기회 줘야”

 이 학교는 올 2학기에 1학년을 대상으로 자유학기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자유학기제는 한 학기 동안 시험을 보지 않고 토론이나 실습, 진로체험 교육을 하는 제도다. 풍산중학교에서 전자장치를 직접 만들어 보는 수업이 가능해진 것은 삼성전자의 자유학기제 참여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전국 중학교 교사 500여 명을 대상으로 1박2일의 소프트웨어 연수를 실시하고 각 학교에 회로기판을 지원하고 있다. 이 학교 최경아(40) 교사는 “프로그램 기법뿐 아니라 교수법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배운 것을 응용하니 컴퓨터로 코딩 연습만 하는 기존 수업과 달리 아이들이 로봇이나 게임을 만들도록 하는 수업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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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시범 운영을 시작한 자유학기제는 내년부터 모든 중학교에 도입된다. 학교마다 1학년 1·2학기, 2학년 1학기 중 한 학기를 자유학기로 운영하게 된다. 교육부는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기업이나 단체·협회 등 학교 밖 기관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하고 있다. 7일에는 CJ그룹과 자유학기제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CJ는 CGV·제일제당·대한통운·CJ오쇼핑 등 계열사가 참여해 영화 제작과 식품 제조 등 다양한 직업 세계 탐방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중학교 진로 교육이 다양하게 이뤄지려면 민간 기업의 적극적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 시범 운영에 참여한 기업은 각기 특색 있는 수업을 선보이고 있다. LG생활건강의 ‘빌려 쓰는 지구 스쿨’은 직원들이 트럭에 세제· 그릇 등의 교육 물품을 싣고 전국 중학교를 찾아간다. 적은 양의 세제로 깨끗하게 설거지하는 방법 등 친환경 생활습관을 배우고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내는 연구원 역할도 해볼 수 있다. NH농협은행은 금융 교육을 한다. 학생이 은행에서 유니폼과 사원증을 착용하고 통장 만들기, 상품 추천 등의 은행 업무를 체험한다. 이를 체험한 경기도 구리중 1학년 현동우(13)군은 “은행원은 막연히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폭넓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일선 교사가 직접 학생들이 직업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자유학기제 정착을 위해 정부가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곳을 확보하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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