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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행태에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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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16, 17, 18대 국회의원

금년에도 예외 없이 정기국회 마지막 판의 볼썽사나운 정치권 행태에 탄식하면서 한 해를 보내는 국민이 많다. 지금 국민들은 우리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불안감을 갖고 있고, 기업들은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 경제의 침체에 따른 세계적 경기위축을 우려해 투자를 꺼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1000명의 지식인이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경제 실정을 18년 전 외환위기 직전 상황과 같은 위기상황으로 진단하면서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로 국회를 지목하고 있다.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가로막고 있는 야당을 질타하는 청와대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야당의 행태를 질타하는 모습은 주요 신문이나 종편 방송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우리는 왜 여야 정당은 국민들의 경제적 불안을 자기들의 불안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여론의 질타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가를 심각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총선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야당뿐 아니라 여당도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한 진지한 입법활동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텐데 당권 장악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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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대표나 주요 계파들은 내년 총선이 내후년부터 시작되는 대선 경쟁의 전초전이라 생각하고 내년 총선에서 자기 계파를 하나라도 더 많이 확보해야 대선후보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내년 봄에 총선에 나갈 사람들은 정당 공천을 받는 것이 선결과제인데 공천 룰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당권의 향방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내각제를 하는 일본이나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는 총선 결과에 따라 정권이 좌우되지만 미국 같은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중앙정치 초년생인 빌 클린턴이나 오바마 같은 신인들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도 미국은 10여 명의 대선후보가 TV 정책토론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13년 전 노무현 후보는 모두 7명의 후보가 각 지역을 순회하는 후보 경쟁에서 지역기반이나 조직이 막강한 후보들을 제치고 돌풍을 일으켜 대통령 후보가 된 경험을 갖고 있다. 한 나라의 민주정치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결국은 그 나라 국민들의 총체적 정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정치역량은 지식인과 여론 형성층이 어떻게 정치현상을 진단하고 여론을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정치인들이 당권 투쟁에 몰두하고 대통령선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정당의 지배구조 및 국가권력의 독점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정치인 개개인의 자질 부족이나 도덕성 때문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국회의원들 중에는 전문 분야의 경륜이 부족한 사람도 있고 도덕성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국민이 뽑은 선량이라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우리나라 정치권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반드시 정당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정당 공천을 받으려면 당권을 장악한 세력에 굴종해야 한다. 따라서 당 대표가 후보 공천에서 손을 떼는 정당 지배구조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우선 내년 총선의 국민공천이나 당원공천제에 하루빨리 합의하도록 여론 형성층이 촉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일이다. 20% 물갈이 같은 것은 당 대표가 아닌 국민이나 당원들이 할 일이다.

 둘째로 선관위는 정당 공천을 당내 행사로 생각해 방관하지 말고 정당 공천이 공명선거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공천제도를 선진화하는 데 적극 노력하고, 후보경선 과정도 조직과 금품이 변칙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엄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후보공천제도 개혁은 정치권 스스로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 그동안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당 대표 중심인 중앙당 운영비는 대폭 줄이는 대신 지역당 조직운영비 지원을 늘리고 정책개발과 정책홍보비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넷째 총선이나 대선 때는 후보 공천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본선거 때까지 한시적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당 대표와 분리 운영해야 한다. 당권 경쟁이 후보 경쟁이 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일이다. 이제부터 언론기관 등 여론 주도층에서는 지금까지 각 정당의 당내 계파갈등을 중점 취재하고 비판하던 자세를 바꿔 ‘정당의 시스템 개혁’을 촉구하고 정책 경쟁을 유도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치 선진국들의 정당 개혁 성공과 실패 사례를 집중 소개해 국민 여론을 탄식과 절망 대신 미래지향적 공감대 형성 방향으로 바뀌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16, 17,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