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72억 원유철 512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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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일 0시48분. 새해 예산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폐회 직후 “예산안 심사가 대단히 부실하고 성의 없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예산안이 통과되기 8분 전인 0시40분 새정치연합 대변인실은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뿌렸다. 제목은 ‘2016 예산안 심사 새정치연합의 성과’. 이 자료에서 야당은 따낸 예산들을 자랑했다. ‘어르신 효도예산 증액(성공)-전국 6만 개 경로당에 국비 지원 602억원 증액’ 등 8개 분야 31개 항목이나 됐다.

여당 실세 5명이 총 1800억
기재부 ‘주요 예산’ 문건 나와

야당 “31개 항목 따냈다” 자랑
박지원 “목포에 786억 증액”

총선 표 앞에 국가살림 흥정
“예결특위 반짝 심사 바꿔야”

 #예산안 통과 직후 국회 기자실엔 기획재정부 문건 하나가 돌아다녔다. ‘주요 예산’이라고 적힌 문건엔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들이 챙긴 예산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문건에 따르면 김무성(부산 영도) 대표는 부산항 국제크루즈 확충 등의 명목으로 72억3000만원, 원유철(평택갑) 원내대표는 서해안 복선전철 건설 등 512억6000만원, 김정훈(부산 남갑) 정책위의장은 지역구에 있는 해운보증기구가 출자를 받는 방식으로 203억원의 예산을 당겨갔다. 김재경(진주을) 예결위원과 김성태(서울 강서을) 예결위 간사 지역구에도 각각 412억원과 600억원의 예산이 증액됐다. 이 5명이 국회 증액 절차를 통해 더 베어간 예산만 1800여억원이다.

 대한민국 예산 흥정의 현주소다. 총선을 4개월여 앞둔 2016년도 정부 예산안은 이렇게 누더기가 됐다. ‘힘 있는 의원들’의 예산 베어가기가 횡행했고, 각 당도 그 결과를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은 “예산심사에서 목포 관련 예산 786억5000만원을 증액시켜 총 3098억원을 확보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런 식으로 예산안 처리 뒤 국회의원들은 “○○○ 의원, 대구 예산 3조5000억원 달성!” “XXX 의원, 국비 1715억원 확보!” 같은 보도자료와 e메일·문자메시지 등을 쏟아냈다. 다 합치면 전체 예산 규모(386조3997억원)를 넘어설 정도다. 이 북새통 속에서 국민의 혈세(血稅)를 어떻게 규모 있게 쓸지에 대한 고민은 실종됐다. 단국대 가상준(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구에서 박수 받을 것만 생각하지, 국민 전체로부터 지탄 받는 데 대해선 도무지 창피한 줄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국민대 홍성걸(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정부 부처 입장에선 의원들이 마구잡이로 잡아놓은 선거용 사업 예산을 집행조차 하기 힘들 것”이라며 “내년에 불용예산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설상임위인 국회 예산결산특위가 9~11월 반짝 심사를 하며 예산안을 주무르는 현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금은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도 예산안조정소위가 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동료 의원들의 은밀한 민원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예결위를 상설화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국회법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궁욱·박유미·이지상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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