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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청계천 상가는 우리시대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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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파란 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1990년대 대학가에서 불렸던 노래 '청계천8가'는 청계천 상가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공사가 다음달 1일로 다가왔다. 청계천이 옛 모습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공사를 시작으로 '돈 없고 백 없는 소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마약만 빼고 다 살 수 있다는 '도깨비 시장' 청계천 상가가 사라진다는 걸 아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여년을 '청계천 토박이'로 살아온 이응선(49)씨도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 중 한명이다.

李씨가 청계천 상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82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은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할 때 그는 매형의 사업을 물려받아 청계천의 15평짜리 점포에서 화공약품 납품을 시작했다. '목돈 좀 만지면 금방 떠나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청계천 상가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다. 李씨는 품목만 6~7번을 바꿔가며 장사를 했지만 많은 돈을 만진 적은 없다. '도둑질 말고는 다 한다'를 좌우명으로 사소한 이익에도 아귀다툼을 벌이는 특유의 청계천 문화에 질릴 때도 있었다.

"구멍가게에 앉아서도 수십억원씩 대기업과 거래하는 이웃 사장들을 보면서도 청계천에서 통용되는 어법, 납품하는 과정 등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립디다. 무엇보다 합리적 상식이 아니라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상인들을 따라잡기가 힘들더군요."

그렇다고 또 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복작거리는 이 동네에서 벗어나야지'하고 수백번 마음을 먹으면서도 몸은 늘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곳을 떠나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청계천에서 번 돈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도 길렀다.

결국 李씨가 청계천 상가를 뜬 것은 지난달. 철거가 코앞에 닥치고서야 젊음을 바친 청계천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李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곧 사라져버릴 청계천 상가에 대한 생각들을 한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제목은 '청계천을 떠나며' (황금가지).

이 책에서 李씨는 청계천 상가를 '우리 시대의 자화상'으로, 청계천 사람들을 '대한민국 사회의 졸병'으로 정의했다. 많이 배우지도, 가지지도 못한 이들이 경제개발의 붐을 타고 몰려들어 속고 속이며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던 역사가 어지러운 상가의 풍경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는 것이다.

청계천 상가의 밝은 면만 쓴 것은 아니다. 李씨는 책에서 청계천 상인들이 납품 과정에서 '오찌'라고 부르며 뒷돈도 주고받는다는 사실까지 솔직하게 털어놨다.

하지만 李씨는 "더럽든 깨끗하든 청계천 상가를 빼놓고는 우리 사회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서민들의 일과 삶, 그리고 아픔을 담은 공간이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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