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揮毫 -휘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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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27면

“장욱은 석 잔 술을 마시고 붓을 들어 초서체의 성인으로 전해진다. 모자를 벗은 채 왕과 귀족 앞에서 맨머리를 보였고, 휘두르는 붓(揮毫) 종이 위에서 마치 구름과 연기인 듯 춤을 췄다(張旭三盃草聖傳/脫帽露頂王公前/揮毫落紙如雲烟).”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보이는 ‘휘호’의 용례다.


지난 24일자 중앙일보는 머리띠에 거산(巨山) 김영삼(金泳三, 1927~2015) 전 대통령의 휘호를 한데 모았다.


대도무문(大道無門). 중국 송(宋)나라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가 화두(話頭) 48개를 엮은 책 『무문관(無門關)』 서문에 나온다. 원문은 “대도(大道)에는 문이 없다. 문이 없는 까닭에 대도로 들어가는 문은 천 갈래 만 갈래 길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무문관을 뚫는 사람은 천지를 활보할 수 있으리라(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다.


송백장청(松栢長靑). 소나무와 잣나무는 오래 푸르다는 뜻이다. 출전은 없다. 공직자들의 자세를 강조한 말이다.


극세척도(克世拓道).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길을 개척한다는 말이다. 역시 전고는 없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자세를 말한다.


유시유종(有始有終). 『논어(論語)』 자장(子張)편에 나온다. “시작도 있고 끝도 있어 온전한 사람은 오직 성인뿐(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이 원문이다. ‘유시유졸’은 처음도 있고 끝도 있어 하나로 관통한다는 말이다.


정기위선(正己爲先). “소인으로부터 자신을 막으려면 우선 자기부터 바르게 함이 우선(防小人之道 正己爲先)”이라는 말이다. 송 주희(朱熹)의 『근사록(近思錄)』에 보인다.선우후락(先憂後樂). 송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 말미의 “천하 사람들이 걱정하기 전에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뒤늦게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에서 나왔다.


거산은 재임 중 세계화를 외쳤다. 영어가 한자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중국 간체자(簡體字)도 등장했다. 직관·휘호 정치가 사라졌다. 심오한 뜻을 강렬하게 전하는 데는 한문 만한 게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국제부 기자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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