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부모의 죽음에서 배우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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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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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한 중년 남자가 육친의 상을 당했을 때 이러한 소회를 말했다. “이제 진짜 고아가 됐지.” 반쯤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가 내면에서 고아라는 감정을 느꼈음은 사실일 것이다. 또 다른 중년 남자는 부친상을 치른 후 이렇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떠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어.” 그는 아버지를 향해 죄의식과 원망의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는 듯했다. 상실 자체를 부정하는 말투 같기도 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남자는 부모의 죽음 앞에서 침묵한다. 입을 꾹 다문 채 조문객을 맞거나 술을 마신다.

 정신분석학이든 심리학이든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주장이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떤 과목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부모의 죽음을 통해 배운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중년 남자는 죽음으로부터 보호받는다. 부모가 먼저 죽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사망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다음 차례라는 것을 깨닫는다. 1순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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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부모의 죽음에서 경험하는 슬픔과 분노, 사랑과 미움, 죄책감과 불안 등 깊고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다면 부모의 죽음은 중요한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차리고, 삶의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면 부모의 죽음을 통해 생의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부모의 죽음은 우리의 의존성과 유한성, 불멸에 대한 소망, 사랑과 포용의 의미, 강점과 동시에 약점을 기억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게 해 준다.”

 긴 인용문은 남자의 중년을 연구한 짐 콘웨이의 책에서 따왔다.

 우리는 성장기 동안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감정, 생존법, 자기 이미지 등의 복합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성취나 좌절, 기쁨과 슬픔의 순간마다 그 경험을 내면의 부모와 공유한다. 부모에게 기대하거나 기여하는 일, 부모를 원망하거나 미화하는 일은 자기 문제를 외부로 투사하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다. 하지만 부모가 사망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 삶의 해법, 의미, 정체성조차 흔들린다. 50세가 되어도 부모 없는 상태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인간 본질에 대한 중요한 통찰에 도달한다. 어른인 척하고 살았지만 내면에서 여전히 아이였다는 것을. 그때부터 성장과 변화가 따라온다. 서설 흩날리는 국가장 의식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보는 동안 국민의 변화도 같은 방식으로 오는 걸까, 의문이 눈보라 같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