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차관급 남북회담, 아쉽지만 대화 동력 살려나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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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과 북이 다음달 11일 개성공단에서 차관급 당국회담을 열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제 있었던 실무접촉에서 남북이 11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합의한 내용이다. 당초 예상을 깨고 비교적 수월하게 합의에 이른 점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남북 모두 모처럼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융통성을 발휘한 결과로 보인다.

 지난 8월 초 북한의 지뢰 도발로 조성된 극도의 긴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양측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이른 시일 내에 개최키로 합의했다. ‘8·25 합의’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 열린 실무접촉에서 차관급 회담을, 그것도 서울이나 평양이 아닌 개성에서 갖기로 한 것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다. 의제도 ‘남북관계 현안’으로 두루뭉수리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데 그쳤다. 요컨대 차관급으로 격을 높여 실무접촉을 한 차례 더 갖기로 하는 선에서 일단 이견을 봉합한 셈이다.

 아쉽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노릇이다. 차관급 당국회담이라도 제대로 열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남북 모두 최대한의 성의와 자제력을 보여야 한다. 과거처럼 수석대표의 격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다 판마저 깨버리는 속 좁은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차피 남북의 직제 자체가 다른 마당에 시시콜콜 직급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의제와 관련해서도 서로 원하는 것은 테이블 위에 다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다는 전향적이고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우리가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북측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맞바꾸는 ‘빅딜’도 가능하다는 통 큰 발상도 필요하다. 차관급 회담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정례적으로 열리는 진정한 당국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남북 사이에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대화에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따르게 마련이다. 성에 안 차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신뢰를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하는 남북대화인 만큼 대화의 동력을 살려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