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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흑인에게 15발 총격 동영상 … 분노의 시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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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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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0일 백인 경관이 흑인 청년을 살해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1년만인 24일(현지시간) 공개되며 미국에서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이날 시카고에서 경찰의 과잉 대응에 항의하는 시위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카고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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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 반 다이크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의 백인 경관이 총 16발을 발사해 흑인 청년을 살해한 동영상이 사건 발생 13개월 만에 공개되면서 시카고의 흑인들을 중심으로 항의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시카고 경찰은 24일(현지시간) 지난해 10월 20일 백인 경관 제이스 반 다이크(37)가 흑인 청년 라쿠안 맥도널드(당시 17세)를 살해한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공개는 법원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이 영상이 공개되기 하루 전 일리노이주 쿡 카운티 검찰은 다이크를 ‘1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자칫 동영상이 먼저 공개될 경우 엄청난 소요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무거운 죄목으로 하루 전에 기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년 만에 공개 … 시민들 거리 시위
총 쏜 백인 경관 1급 살인죄 기소
CNN “퍼거슨 사태 재현될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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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에서 백인 경찰 제이슨 반 다이크가 흑인 청년 라쿠안 맥도널드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다. [시카고 AP=뉴시스]

 경찰차 카메라가 녹화한 7분 가량의 동영상은 음성은 없지만 당시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밤 9시 57분 경 당시 작은 칼을 들고 경찰차 타이어를 긁던(영상에는 없음) 맥도널드는 경찰차가 출동하자 왕복 4차선 도로의 중앙선을 뛰어갔다. 신고를 받은 경찰차 3대가 출동한 상황에서 맥도널드는 뛰는 걸 멈추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다이크 경관은 맥도널드의 왼쪽 전방에서 총을 겨누었다. 또 다른 경관도 총을 겨눈 상태였다. 경관과 맥도널드가 4.6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맥도널드가 별다른 위협행위 없이 오히려 경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하던 순간 다이크 경관이 발포했다. 맥도널드가 총에 맞아 쓰러진 뒤에도 15발의 총알을 퍼부었다. 동영상엔 맥도널드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다.

 다이크를 기소한 애니타 알바레스 검사는 “다이크 경관이 현장에 도착한 지 30초도 안 돼 총을 쐈다”며 “총격은 14~15초간 이어졌고 이 중 13초는 맥도널드가 이미 총에 맞아 도로에 쓰러진 후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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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맥도널드에게 14~15초 동안 16발을 퍼부어 살해했다. [시카고 AP=뉴시스]

 사건 당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24일 밤부터 시카고 경찰청사 부근에는 흑인을 중심으로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상당수는 서로 팔짱을 낀 채 침묵시위를 벌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격한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늘어났다. CNN과 폭스뉴스 등 미 주요 방송사는 생중계로 시위 현장을 연결하며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폭동으로 번진 1년 전 ‘퍼거슨 사태’나 올 4월의 ‘볼티모어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에는 일반인이 백인 경관의 체포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폭동의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이날 시카고 시위는 백인 경관에 불기소 결정을 내렸던 퍼거슨(미주리 주) 사태와 달리 ‘1급 살인죄’로 기소가 이뤄진 직후라 그런지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됐다. 반 다이크는 유죄 평결시 징역 20년형 이상 또는 최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한편 22일 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시에서 열린 ‘흑인생명도 소중하다’ 인권집회 도중 시위대에 총격을 가한 백인 용의자 중 2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흑인 시위대 5명이 다리와 팔, 복부에 총을 맞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CNN은 23일 전국에서 다발하는 인종 차별문제와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CNN이 전국 19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얼마나 큰 문제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9%가 “큰 문제”라 답했다. 이는 2011년의 28%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흑인(66%), 히스패닉(64%)의 비중이 백인(43%)보다 월등히 높았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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