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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음주 측정에도 때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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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9일 오후 8시40분쯤 전남 나주시 한 해장국집 앞. 5년 만에 고향 후배를 만나 식사를 하며 반주로 술을 마신 택배기사 A씨(47)는 자신의 1t 화물차에 시동을 걸었다.

A씨는 운전을 하며 집으로 항하던 오후 8시50분쯤 음주운전 단속 중이던 경찰과 맞닥뜨렸다. 경찰이 내민 음주 감지기에 입을 대고 '후' 불자 '삐삐삐'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경찰이 A씨를 운전석에서 내리게 한 뒤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한 결과 면허 정지 수치 최소 기준인 0.050%가 나왔다. 경찰은 면허를 취소했다. A씨가 10여 년 전에도 이미 2차례 음주운전을 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면허가 취소되면 직장인 택배회사에서 퇴출되고 택배 배송 전용 화물차등록번호도 반납하게 돼 생계가 어려워질 처지에 놓인 A씨는 "면허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이 자신을 적발 후 음주 측정이 약 15분 지연돼 운전 당시보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높게 나왔다는 주장을 곁들였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광주고법 행정1부(부장 박병칠)는 A씨가 전남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자동차 운전면허 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판단대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앞서 광주지법도 지난 6월 "전남경찰청은 면허 취소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 재판부 판단이 정당하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혈중알코올농도가 통상 최종 음주 후 점차 상승해 30분에서 90분 무렵에 최고치에 이르는 점에서 이런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처럼) 최종 음주시점이 오후 8시40분이라면 음주운전 시점인 오후 8시50분은 물론이고 (14분 뒤) 측정 시점인 오후 9시4분도 상승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어 "따라서 (측정 14분 전인) 음주운전 시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측정 때 나온 0.050%보다 낮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운전 당시에는 면허 정지 수치에 못 미치는 혈중알코올농도 상태였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경찰은 "음주 측정은 통상의 절차에 따라 이뤄져 지연된 것이 아니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판결"이라고 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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