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출신 마크리 ‘남미의 병자’ 아르헨티나 구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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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당선된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 경제 재건을 위한 파격적인 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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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12년간의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를 종식시킨 중도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56) 대통령 당선자가 파격적 정책 변화를 예고했다. 기업가 출신의 자유시장 신봉자인 마크리는 “장기 불황을 벗어나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질서를 모두 바꿔버리겠다”고 약속했다.

“장기 불황 부른 포퓰리즘 끝낼 것”
이탈리아계 토목·건설 갑부 아들
축구팀 보카 주니어스 구단주 거쳐
‘부에노스’ 시장 땐 대중교통 혁명

 그는 23일(현지시간)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의 외환 통제, 부정확한 경제 통계 등 나라의 잘못된 상황을 점검하는 데 집중하고 포퓰리즘과는 작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르헨티나는 2003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에 이어 2007년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정권을 잡으며 12년간 ‘키르치네르주의(Kirchnerismo)’라 불리는 좌파 정권이 이끌어 왔다.

 아르헨티나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0.4%, 물가상승률은 25%에 달할 전망이다. 브라질·베네수엘라 등 좌파 정권이 들어선 인근 남미 국가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중남미에서는 원유·철광석 등 원자재 시장 호황과 맞물려 좌파 정권이 득세했지만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붐이 꺼지고 경제가 나빠지며 좌파 정권 회의론이 힘을 얻고 있다.

 마크리는 이탈리아계 토목·건설 갑부인 프란치스코 마크리와 스페인계 어머니 알리시아 블랑코 비예가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 가톨릭대(UCA)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공부했다. 26세부터 아버지 회사인 소크마 그룹에서 경영 수업을 받았고, 아르헨티나에서 푸조와 피아트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벨아르헨티나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는 1991년 아르헨티나 경찰 출신 갱단에 12일간 납치당해 수백만 달러의 몸값을 주고 풀려났다. 마크리는 “납치됐을 때 ‘좋은 정치를 해서 좋은 나라를 세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95년부터 12년간 아르헨티나 인기 프로축구팀 보카 주니어스 구단주를 지냈다. 구단주를 하면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에 뛰어든 그는 200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에 도전했지만 낙선하고, 2007년 재출마해 당선됐다.

 마크리는 시장으로 재직하며 버스 전용차선 도입 등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중교통 체계를 뜯어고쳐 ‘아르헨티나의 이명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시청의 계약직 공무원 2400여 명을 해고해 행정 효율화에도 나섰다. 그의 과감한 행정 쇄신은 포퓰리즘 정책에 따른 누적된 부채로 지난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대비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달 10일 취임하는 마크리는 대대적인 정부 조직 개편에 나선다. 그는 “아르헨티나 경제가 부진한 이유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 때문”이라며 “경제를 정상 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경제 장관직부터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노동·생산·교통 장관 등을 모두 아우르는 경제 각료회의를 창설해 국가 재정 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또 미국 월가의 헤지펀드 등 해외 채권단들과 부채 경감 협상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이념 갈등을 봉합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당에 상관없이 누구든 등용하겠다”며 여당에도 협조를 구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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