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참 무서웠던 아버지 … 지금도 화내는 사람만 보면 떨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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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두려움 뒤에는 억압된 분노가

분노에 대처하는 법

Q(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요) 화를 내거나 싸우는 사람을 보면 그 화가 저를 향한 게 아니어도 움츠러들고 상대와 눈 마주치기 무서워집니다. 필요 이상으로 불편하고 동시에 눈치를 보게 됩니다. 화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로부터 시작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어 집에서 사소한 청소나 생활습관 문제를 자주 지적하셨습니다. 본인이 계획한 대로 따르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곤 하셨죠. 혼나는 순간에 저는 아무 소리 못 하고 그 화를 그대로 받아야 했던 무기력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정 많은 면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화내는 사람이란 일단 나쁜 사람, 두려운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화나 짜증을 내는 사람을 보면 순간 위축되고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불쾌해지곤 합니다. 저는 왜 이럴까요.

A (어릴 적 기억이 투사된 거라는 윤 교수) 화, 분노는 그 자체로 병적인 감정 반응은 절대 아니죠. 분노는 내 마음의 공격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언가 내게 위협이 될 때 분노 반응이 일어나면서 싸울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남이 나를 때리는데도 화가 안 나면 내 공격성을 사용하기가 어렵겠죠. 분노는 나를 지키기 위해 공격 행동을 일으키는 감정 신호입니다. 분노해야 결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직접적인 결투보다는 법 체계 같은 사회 시스템으로 개인 간의 갈등을 주로 해결합니다. 따라서 분노를 함부로 내보였다가는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립니다. 심하면 법적인 문제도 발생하죠. 그래서 내 분노가 느껴질 때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외부로 터져 나와 행동으로 나타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발생하는 것이죠.

 특히 화가 나는 분노의 대상이 윤리적으로 존경해야 하는 사람일 때 그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화를 내게 되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한 것이기에 자신을 용서하기 어렵고, 그 죄책감에 자존감마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면 안 되는 대표적인 금기의 대상이죠. 그러나 화를 내는 아버지에게 자녀는 분노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동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죠. 그러나 아버지이기에 분노를 보인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러다 보면 과도하게 분노를 억압하게 됩니다. 너무 누르게 되니 마음 안에 큰 분노가 쌓이고, 그것이 튀어나올까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거죠.

 오늘 사연 안에 양가감정, 즉 이중적 감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지나치게 화를 내는 무서운 아버지와 정 많고 따뜻한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화내는 사람을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두렵다고 인식하는 것은 그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 투사되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02 열 받아서 욱하면 결국 손해

Q (바보같이 꾹꾹 속앓이만 해요) 화나 짜증과 같은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저는 다른 사람과 갈등을 느낄 때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혼자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점점 그 상대가 마음에 안 들게 됩니다. 종종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면 저 자신도 놀랄 만큼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상황이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쌓여버린 화가 상황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필요 이상으로 소모적인 마음 앓이를 했다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때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A (하루 정도 참는 건 좋다는 윤 교수) 분노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래서 분노를 표현하게 되면 관계는 일단 손상됩니다. 그렇다고 그 감정을 그냥 찍어 누르면 분노는 더 진하게 숙성되고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하게 되죠. 결과적으로 내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를 참으며 억지로 겉으로만 아무 일 없는 척 유지하는 관계도 내게 유익을 줄 것은 없겠죠.

 우선 분노가 생기면 하루 정도는 표현하지 않고 내 감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도한 공격 반응이 나와 상대방뿐 아니라 나한테도 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내 마음 상태가 안 좋아 그냥 지나갈 일에도 화를 낸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잠만 제대로 못 자도 예민해져 별것 아닌 것에 화를 낼 수 있으니깐요.

 하루 이틀, 감정을 지켜보았는데도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지속한다면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저 사람에게 내 분노를 표현할 가치가 있는지를요. 타인에 대한 분노 표출은 나도 다치게 합니다. 어찌 됐던 남을 공격하는 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화를 내고 그 순간은 시원할지 몰라도 좀 시간이 지나면 찜찜한 마음이 듭니다. 나도 상대방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그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 사람은 욕먹어도 싸다’며 상대방의 문제점을 더 합리화하게 되는데 이 또한 마음에는 다 일이죠. 마음이 더 지치게 됩니다.

그래도 화낸다면 구체적으로

 다시 정리해 보면 일단 화가 나면 하루 정도 지켜보고, 그래도 화가 지속하면 화를 낼 가치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내 마음도 다치게 하는 일이기에 그럴 가치가 없는 상대라면 그냥 관계를 멀리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저쪽에서 나를 화나게 했는데 내가 반격해서 화를 내주면 상대방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어찌 됐건 성숙한 행동은 아니고,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이 화를 낸 것에 대해 합리화하기 쉬운 것이죠.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하고요. 마음도 경영이라 행동 전 내가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한 번쯤은 예상하고 따져 볼 필요가 있죠.

 화를 낼 가치가 있다면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나를 속 상하게 했는지를 말해줘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으면서 격분한 나머지 그냥 ‘넌 성격이 이상해, 넌 가망이 없어, 너희 집안은 왜 그러니’ 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면 관계는 개선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상처만 더 커지게 됩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남자친구가 여자 후배들과 격 없이 지내는 것이 매우 싫었던 여성이 있습니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고쳐지지 않아 싸움도 잦고 이별 직전까지 간 상황이었는데요. 남자친구에게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종이에 구체적으로 2~3개 항을 적어 이것을 지켜달라 말해보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 관련으로 만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인 만남까지는 하지 않기’처럼 말이죠. 그 여성은 제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제가 ‘어차피 헤어질 생각도 있는데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한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이후 관계가 좋아져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여성이 하는 말이 ‘그렇게 여러 번 화를 냈는데도 내가 뭘 싫어하는지 모르고 있었고, 자기 제안을 뜻밖에 쉽게 받아들여 놀랐다’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에게 섭섭한 것을 이야기할 때 칭찬을 곁들이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점은 참 좋아. 그런데 이런 점이 나를 화나게 해’ 식으로요. 그래야 상대방이 자신의 변화에 기분 좋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좋은 사람인데 더 좋은 사람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거니까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눈물도 공감도 노동이다, 때론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학창시절 나처럼 아이도 왕따 될까 두려워
연애할수록 외로워, 전에도 그래서 헤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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