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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꽃들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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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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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논설위원

끔찍한 테러 소식 한가운데서도 가슴을 울리는 뭉클한 순간은 있다.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로 아내를 잃은 프랑스 기자 앙투안 레리가 “가슴이 찢어지도록 고통스럽지만…내게서 증오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편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가슴을 치더니, 이번에는 베트남계 프랑스 부자의 대화가 세계를 사로잡았다.

 16일(현지시간) 파리 바타클랑 극장 앞의 추모객들을 인터뷰한 카날플뤼 방송의 토크쇼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중 일부다. 페이스북에 공개된 이 영상은 조회 수가 무려 1400만 건을 넘겼다. 아마도 며칠 새 세계인이 가장 많이 본 동영상일 것이다. “정말 나쁜 사람들. 우리는 이사 가야 할지 몰라요”라고 말하는 다섯 살 아들에게 젊은 아버지는 “우리는 떠나지 않아도 돼. 프랑스는 우리 집이니까.…이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어”라고 답한다. “우리에겐 총 대신 꽃이 있고… 모든 사람이 꽃을 갖다 놓으며 총과 맞서 싸운다”는 아버지의 말에 “꽃은 아무것도 못하잖아요”라던 아들은 “꽃과 (추모) 촛불이 우리를 지켜주는 거군요”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현자와도 같은 부자의 대화에 뉴욕타임스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비극을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한 답변을 줬다”란 평까지 내놨다.

 이 영상을 보는데 지난해 이란 북부의 한 마을에서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한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란에서는 ‘정당한 보복’을 뜻하는 ‘키사스(qisas)’라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피해자 가족 입회하에 공개 처형이 이뤄진다. 유족이 사형수 발밑 의자를 치워 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교수대에 오른 피해자 압둘라의 어머니는, 검은 천으로 두 눈을 가린 20대 사형수가 “살려달라”고 울부짖자 돌연 그의 뺨을 후려치며 “너를 용서하겠다”고 외쳤다. 압둘라의 아버지도 말없이 사형수 목의 올가미를 풀었다. 그는 “아들이 며칠 전 아내의 꿈에 나타나 좋은 곳에 있으니 복수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부부는 사형수의 부모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 사건 이후 이란의 공개처형 제도에 대한 폐지론이 크게 일기도 했다.

 참혹한 테러 현장에서 총보다 꽃의 힘을 말한 아버지, 또 아들을 죽인 살인자에게 오직 뺨 한 대를 친 어머니. 테러와 폭력의 무한 고리에 맞서는 가장 인간적인 항거, 고결한 인간의 품격을 보여준 이들이다. 비폭력과 용서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울림을 주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 흘러가고 있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