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쪽지 비판 못 들었나” “시작한 건 여당 … 치사한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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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회 예산 심사가 또 파행을 겪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인간 쪽지’ 문제로 정면충돌하면서다. ‘인간 쪽지’란 야당이 위원을 한 명이라도 더 밀어 넣으려고 매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 위원들을 교체 투입하는 것(사·보임)을 지칭한다. <본지 11월 18일자 12면>

예산소위 야당 새 멤버 투입에 파행
야당 “교체 투입 없다” 선언 뒤 재개

 내년 예산안 ‘386조7000억원’의 구체적인 삭감·증액분을 확정해야 하는, 갈 길 바쁜 예산소위는 소걸음만 하고 있다.

 18일 오전 11시 국회 638호 예산소위 회의실엔 전날 소위에 참석했던 새정치연합 박범계 의원 대신 배재정 의원이 참석했다. 그러자 “또다시 의원을 바꾸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별렀던 새누리당에서 박명재 의원이 포문을 열었다. 박 의원은 “‘꼼수’ ‘인간 쪽지’ 등 언론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소위의 위상을 찾기 위해서라도 위원장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한다”고 내질렀다. 반면 새정치연합 최원식 의원은 “(호남이 지역구인 이정현 의원을 소위에 추가하지 않은 것을 빗대) 여당은 호남을 버린 것 같다. 저희는 전국 정당이라 지역을 못 버린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김재경 예결위원장이 “좋은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겠다”며 회의를 그냥 진행하려 하자 여당 간사 김성태 의원이 폭발했다. 그는 같은 당 소속 김 위원장을 향해 “위원장도 가식적이다”고 들이받았다. 이후 여야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김성태=“쪽지 예산에 대한 국민 공분도 모자라 ‘쪽지 국회의원’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보임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예산이 급하지만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은 잘못이다. 야당은 (여당의 누가) 사·보임한다고 문자를 했는지 공개하고, 언론에 새누리당도 사·보임하는 것처럼 말한 것을 사과해라.”

 ▶새정치연합 안민석=“(여당이 말을 바꿨다는 의미에서) 대통령께서는 ‘치사한 정치’를 탓해야 한다. 배반 정치만 탓하면 안 된다.”

 ▶김성태=“여기서 왜 배반·치사 정치가 나오나.”

 ▶안민석=“증액 심사 때 여당이 사·보임하겠다는 걸 들었다는 언론인들이 10명은 될 거다.”

 ▶김성태=“문 열어. 언론 들어오라고 그래.”

 ▶안민석=“여당이 언론에 사·보임하는 걸로 했으니까 우리는 그 방식대로 따라간 거다. 양심에 손 얹고 생각해 봐라.”

 김 위원장이 말리려 했지만 두 간사는 “(여당 위원들을 향해) 다 나와! 정회해 정회!”(김), “원내대표 입장인가. 김무성(대표) 메시지 받고 온 거지!”(안)라며 고성을 멈추지 않았다. 회의는 중단됐고, 오후 3시15분에 재개되기까지 4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여론을 의식한 새정치연합이 “현 멤버 이외의 위원 교체는 없다”고 선언한 뒤에야 소위는 다시 열렸다.

 ◆가뭄예산 기겁하는 야당=지난 17일 진행된 예산소위 감액 심사에서는 댐·하천 정비사업 등 물과 관련된 예산에 야당 위원들이 줄줄이 감액 의견을 냈다. “지방 상수도 누수 정비를 지원할 돈은 없다면서 왜 평화의 댐 하류, 낙동강 정비에 돈을 넣느냐”(이상직), “4대 강 보호 예산 아니냐”(안민석)는 등의 문제 제기를 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내년 가뭄예산을 1261억원 증액키로 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야당이 물의 ‘ㅁ’만 나와도 감액을 주장해 심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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