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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무실점·무패행진, 한국축구 바꾼 슈틸리케의 개미떼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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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개미들이 하나로 뭉치면 개미핥기에게 잡아 먹히지 않는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9월 24일 서강대에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리더의 역할'이란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한 애니메이션 광고를 보여줬다.

천적인 개미핥기가 입으로 개미 한 마리를 빨아들이자 대장 개미의 지휘 아래 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동그랗게 뭉친다. 개미떼는 개미핥기의 입보다 훨씬 더 크게 뭉쳐 위기를 모면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 얼음 위 펭귄들은 한쪽으로 움직여 상어의 습격에서 벗어난다. 꽃게들은 하나로 뭉친 뒤 집게를 들어 갈매기의 공격을 막아낸다.

슈틸리케 감독은 "리더는 모범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팀원들에게 영감을 줘야 한다. 팀원들은 공동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팀워크를 강조했다. 그는 '팀(TEAM)'이란 단어를 'Together Everyone Achieves More(함께 하면 더 큰 성취를 얻는다)'로 풀이했다.

'팀 슈틸리케'는 2015년 승승장구했다. 축구대표팀은 17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G조 원정 5차전에서 라오스(176위)를 5-0으로 대파했다. 6전 전승을 달린 한국은 최종예선행을 향한 8부 능선을 넘었다.

올해 총 20경기에서 16승3무1패를 기록했다. 최근 13경기 연속 무패(10승3무)다. 승률 80%와 함께 1980년 이후 35년 만에 A매치 한해 최다승(16승)을 세웠다. 총 44골을 넣고, 4골만 허용했다. 20경기 중 17경기가 무실점이고, 경기당 평균 0.2실점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 209개국 중 경기당 평균 최소실점이다.

일정상 주로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거둔 성과고, 앞으로 강팀과 맞붙으면서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야한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위기에 빠진 한국축구의 소방수로 나선 슈틸리케 감독은 1년간 한국축구에 '이기는 DNA'를 이식했다. 과거 약팀을 만나 밀집수비에 고전한 적도 많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다산 슈틸리케 선생'이라 불린다. 실리를 추구하는 전술 스타일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뜻이다.

'다산 슈틸리케 선생'의 숨은 리더십은 비디오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미팅 때 다양한 영상 자료를 활용했다. 직접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슈틸리케가 서강대 특강 때 튼 벨기에 운송회사 드 레인 광고영상 출처=유튜브]

서강대 특강 당시에는 차두리(35·서울)가 지난 1월 아시안컵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에서 60m 폭풍질주 끝에 손흥민(23·토트넘)에게 멋진 크로스를 올려 골을 이끌어내는 장면도 보여줬다. 슈틸리케는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25·카타르SC)에게 2014-2015시즌 바르셀로나(스페인)와 유벤투스(이탈리아)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세 장면을 편집해 보여준 적이 있다. 슈틸리케는 한국영에게 "바르셀로나 수비형 미드필더 세르히오 부스케츠(27)를 눈여겨 보라. 그는 리오넬 메시(28)가 수비 진영까지 내려와 공을 달라 하면 물건 건네듯 준다. 부스케츠는 드리블과 슈팅 등 어디 하나 처지는 선수가 아닌데도 자신의 임무가 뭔지를 안다"며 "선수들은 포지션별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한다. 이에 벗어나는 행동은 팀에 해가 된다"고 강조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2월 대한축구협회 기술 컨퍼런스에서는 "공을 갖고 있지 않아도 상대 선수와의 거리를 4m~4m83㎝로 유지하면서 압박해야 한다"며 '㎝' 단위까지 써 가며 수비를 강조했다. '팀 슈틸리케'는 한국팀이 1970·75·78년 작성했던 연간 A매치 최다 무실점 경기(13경기) 기록을 4경기나 늘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월 30일 호주와 아시안컵 결승 전날 밤에는 상대 전력 분석 대신 호주 교민들의 응원 영상을 틀어줬다. 감독이 대표팀 관계자에게 호주 교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달라고 부탁해 현지에서 제작했다. 동영상에 등장했던 호주 교민은 "태극기 달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큰 힘을 얻는다" 고 말했다. 태극마크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느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손흥민은 0-1로 뒤진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터뜨린 뒤 광고판을 뛰어넘어 한국팬들이 모인 관중석에 몸을 던졌다.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은 재계에서도 화제다. 허창수(67) GS그룹 회장은 지난 2월 신임 임원들에게 "무조건 많은 골을 넣는 화려한 경기보다는 한 골을 넣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슈틸리케 감독의 실용주의 리더십을 배우자"며 "슈틸리케 감독은 오로지 실력으로만 인재를 발굴했고,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수평적인 소통으로 팀워크를 일궜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슈틸리케가 서강대 특강 때 튼 벨기에 운송회사 드 레인 광고영상 출처=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yQJZUHm0H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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