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한·중 FTA 비준, 지체할 시간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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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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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11월 11일 중국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해 같은 날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가 숫자 1이 네 번 겹치는 이날을 ‘솔로데이’(중국어로 광군제)로 명명하며 할인행사를 기획했다. 올해는 하루 쇼핑몰 매출액이 10조원을 돌파하며,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자리 잡았다.

 13억 인구 거대 소비시장의 부상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6월 국회에 제출된 한·중, 한·베트남,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 등 FTA 비준동의안의 처리다.

 FTA 비준처리를 지체할 수 없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첫째,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대 중국 수출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 전체 수출의 약 25%를 차지한다. 한·중 FTA 발효 시 예상되는 1년차 수출증가액은 1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비준 지연으로 연내 발효가 불가능해지면, 한국 경제가 매일 약 40억 원의 손실을 보는 셈이다.

 둘째, 효과 측면에서도 연내 발효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발효 시점에 바로 관세가 인하되고 매년 관세인하 일정에 따라 추가로 관세가 인하되기 때문에 올해 발효하면 내년 1월 1일, 불과 한 달여 만에 또 한 번 관세가 인하된다. 최근 한국 경제는 수출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출촉진을 위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신시장을 찾거나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두 번의 관세인하로 단번에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니 이보다 확실한 수출 진작 방안이 어디 있겠는가.

 셋째, 민감한 농수산업 분야를 최대한 방어해 FTA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FTA 농수산업 개방수준을 보면 수입액 기준으로 한·미 FTA는 92.5%, 한·호주 FTA는 98.4%, 한·ASEAN FTA는 56.2%인 반면, 한·중 FTA는 40%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1조7000억원 규모의 한·중, 한·베트남, 한·뉴질랜드 FTA 보완대책도 마련해 6월에 이미 국회에 제출됐다.

 10월 말에 있었던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중 FTA의 연내 발효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중국은 국내 비준절차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연내 발효에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한·중 FTA보다 서명이 늦었던 중·호주 FTA의 경우에도 호주 측의 국내 절차가 이미 완료돼 발효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도 연내 발효를 위해서는 11월 26일까지 국회의 비준동의안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고 만시지탄(晩時之歎)해도 될 만큼 경제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한국은 52개 국과 15개의 FTA를 체결하며 세계 통상 분야 우등생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영원한 우등생은 없다.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뒤처지고, 이를 만회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시험대에 서 있는 한국 경제가 이 관문을 잘 통과해서 진전을 이루어내길 소망한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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