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법원, "노출 심한 옷차림 찍었어도 다리 등 특정부위 아니면 처벌 대상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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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을 몰래 찍었어도 여성의 옷차림의 노출이 심하고, 대상이 다리 등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이라면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 북부지법 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는 지난 4~5월 사이 지하철 역사 등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여성의 ‘몰카’를 찍은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36)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씨는 지하철 4호선 범계역 계단에서 여성을 뒤따라가며 몰래 사진을 찍는 등 거의 매일 몰카를 찍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담은 사진은 58장이었다. 사진 속 여성들은 모두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등 노출이 심한 차림이었다고 한다. 다리만 부각해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고, 전신을 찍은 것도 16장이나 됐다.

박 판사는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이나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 등 여성의 전신을 찍은 16장의 사진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박 판사는 “유교 성향이 짙던 우리 사회도 시스루·핫팬츠·미니스커트 등 여성 패션의 빠른 진화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면서 “여성을 무단 촬영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 구별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출이 심하다 해서 평상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전신까지 형법상 처벌 대상인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해석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해석”이라고 덧붙였다. 박 판사는 이어 “결국 이는 초상권 같은 민사로 풀 문제”라고 설명했다.

박 판사는 이씨가 여성의 다리에 초점을 맞춰 찍은 사진에 대해서는 유죄라고 판단했다. 이씨의 변호인 측은 “여성의 다리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부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일부러 ‘하이앵글’이나 ‘로우앵글’로 근접 촬영한 점을 봤을 때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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