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심장박동·체온 맘대로 조절, 스트레스야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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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백병원 우종민 교수(오른쪽)가 윤이슬(가명)씨의 심장박동, 체온 등 자율신경을 관리하는 바이오피드백 치료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석준]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간다. 피할 수 없다면 부닥쳐 극복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의학적인 치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율신경계를 제어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심장박동·혈압 등을 마음대로 조절하며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 보호벽’을 치는 것이다. 모바일 헬스케어의 발달로 더욱 주목받는 바이오피드백의 원리와 발전상을 짚어본다.

저변 확대되는 ‘바이오 피드백’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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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4개월 전 직장을 옮긴 윤이슬(28·여·가명)씨. 낯선 업무 환경, 새로운 인간관계에 적응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손발이 쉽게 차가워졌고, 어깨와 목이 뭉쳤다. 그를 가장 괴롭힌 건 두 달 전부터 찾아온 수면장애였다. 약도 잘 듣지 않았다. 성격이 예민해지며 없던 두통이 생겼다. 그 사이에 몸무게는 4㎏이 줄었다.

11일 윤씨는 스트레스 치료를 위해 서울백병원을 찾았다. 치료를 맡은 정신건강의학과 우종민 교수는 바이오피드백 치료를 권했다. 가슴과 배에 호흡을 측정하는 밴드를 차고, 이마와 왼쪽 팔에는 근육 긴장도를 체크하는 근전도 센서를 달았다. 손가락에는 피부전도도(땀), 체온, 심박수를 확인하는 센서를 부착했다. 모니터를 보자 각각의 센서로 측정된 윤씨의 생리반응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우 교수는 이를 통해 “윤씨의 호흡수는 1분에 18회 정도로 얕고 빠르다. 이마 근전도도 일반인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인다”며 “스트레스가 만성화됐다”고 진단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심장과 근육에 부담이 커졌고, 수면장애·두통 등 신체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복식호흡을 권했다. 가슴과 배에 손을 올려 촉각으로 호흡을 느끼도록 하고, 동시에 1분에 15회 이하로 호흡량을 조절하게 구령을 붙여가며 유도했다. 모니터에는 가슴과 배에 두른 밴드의 수축, 이완 정도와 심박수를 측정하는 포물선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우 교수는 윤씨에게 “각 지표가 동일한 모양을 그리도록 호흡하라” “깊은 호흡 시 느낌을 기억하라”고 지도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30여 분 만에 윤씨의 근 긴장도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스트레스, 자율신경계 교란 만병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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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백병원 신경생리검사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로 인한 신체 변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과 혈관이 수축돼 몸에 힘이 들어간다. 스트레스가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깨뜨려서다.

자율신경계는 호흡, 심장박동, 체온조절 등 생명 유지에 직접 관여하는 신경을 말한다. 크게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뉜다. 교감신경이 몸을 흥분시키는 ‘액셀러레이터’라면 부교감신경은 몸을 이완하는 ‘브레이크’다. 이 두 신경이 시소를 타듯 작동해야 우리 몸도 긴장과 휴식 사이에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한다.

스트레스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해 활성화한다. 휴식 없는 긴장 상태만 계속된다. 심장에 무리가 오고 근육이 뻣뻣해지며 고혈압과 심장질환, 두통, 근육통, 소화불량 등 각종 병에 시달린다. 자율신경계 균형이 틀어지면 내분비계·면역계 등 건강 유지 시스템도 도미노처럼 오작동을 일으킨다. 불안·초조·수면장애 등도 과도한 교감신경의 장난이다.

바이오피드백은 틀어진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스스로 회복해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몸의 이상을 치료한다. 훈련을 거쳐 혈압, 심장박동, 체온을 ‘마음먹은 대로’ 조절해 스트레스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미국 록펠러대 심리학자인 닐 밀러 박사가 이 개념을 도입했을 때만 해도 의료계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후속 연구로 효과가 입증되면서 지금은 정신신체의학의 치료법으로 정립됐다. 국내에는 1980년대 중반 도입돼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됐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함봉진 교수는 “바이오피드백은 긴장성 두통, 수면장애 등 스트레스 질환부터 변비나 통증 조절 등에 널리 활용된다”며 “부작용이 없고 임산부처럼 약물에 민감한 환자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모바일 이용해 대중화 가능성 높아져

가장 큰 장점은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스트레스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함 교수는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은 환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생활을 포기하게 하지만 바이오피드백은 근본적인 자기 변화를 유도해 자신감을 높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각 지표에 따라 맞춤형 스트레스 관리가 가능하고, 생리 변화를 환자가 보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7만~10만원에 달하는 비용, 한 차례에 30~40분, 최대 10회 이상의 긴 치료시간은 단점이다. 바이오피드백이 널리 보급되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이나 시계 모양의 모바일 헬스케어 기기가 발달하면서 바이오피드백 치료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함 교수는 “의료진과 함께 바이오피드백 치료를 받고, 모바일 헬스케어 기기를 활용해 집과 가정에서 이를 적용하면 강력한 스트레스 대처·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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