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떠도는 ‘원유 난민’ 1억 배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기사 이미지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40달러 선에 턱걸이 했다. 석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지난주 말 배럴당 40.74달러까지 떨어졌다. 전날보다 2.42% 낮다. 산유국의 과잉 생산과 중국 등의 수요감소, 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등이 겹친 탓이다.

미국·중국 등 이미 30억 배럴 비축
OPEC, 내달 총회서 감산 논의
유전개발 안 해 공급부족 올 수도

 블룸버그 통신은 15일 전문가의 말을 빌려 “원유값이 올 7~8월 가파른 하락에 이어 다시 급락 국면에 진입했다”며 “최근 원유 재고량에 비춰 국제원유 시장에서 팔자 주문이 좀체 진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등이 비축한 원유량이 무려 30억 배럴에 이른다. EIA는 13일자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만이 원유를 비축한 게 아니다”며 “정유회사 등 민간 부문의 비축이 굉장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30억 배럴은 세계가 약 30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원유량이다.

 공해상을 떠돌고 있는 원유도 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FT) “적어도 1억 배럴의 기름이 유조선에 실려 바다 위를 떠돌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각국 비축시설이 거의 차 여유가 없어서다. 또 원유 수요가 줄다보니 수입국 항구에서 유조선 정체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그 바람에 석유회사들이 유조선 속도를 최대한 늦추도록 하고 있다. FT는 “1억 배럴이면 세계가 족히 하루 쓰고도 남는 양”이라며 “이는 올해 초보다 2배 정도 많은 양”이라고 보도했다. 공급 과잉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0년 이후에나 공급 과잉이 해결될 전망”이라고 했다. 앞으로 5년 정도 하루 원유 생산량이 소비보다 100만~200만 배럴 정도 많은 상황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비상이다. 다음달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기총회를 연다. 감산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감산은 원유시장을 미국 등 비(非) OPEC 산유국에 내주는 행위”라고 믿고 있다. 감산 합의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요즘 ‘공급감소=유가상승’을 가능하게 할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 남아도는 원유 때문에 유전 개발과 채굴을 위한 투자도 빠르게 줄고 있다. 블룸버그는 “약 2000억~2200억 달러에 이르는 원유 관련 투자가 올해 취소됐다”고 전했다. 1990년대 저유가 시대에도 원유개발 투자가 급감했다. 그 바람에 90년대 후반부터 원유공급 부족현상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원유가격 수퍼사이클(대세상승) 현상이 나타났다.

 OPEC은 최근 보고서에서 “저유가가 투자 감소로 이어져 원유공급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며 “2020년 이후부턴 원유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