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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우스’가 한반도에 주는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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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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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역사적인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정상회담이 7일 싱가포르에서 있었다. 분단 70년의 한반도엔 참 부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린 이번 회담에 숨긴 메시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숫자부터 보자. ‘66 대 80’. 양안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걸린 시간, 66년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만나 악수한 시간, 80초다. 80초를 위해 66년을 기다린 양안의 인내, 거시적 안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1조2000억 대 5200억’도 있다. 올해 예상되는 중국과 대만의 GDP(단위 달러)다. 21배 차이다. 양안 종합 국력은 차이가 더 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을 대등하게 대했다. 왜 그랬을까. ‘통일’을 위해서다. 우리가 북한을 대할 때 경제적·이념적 ‘차이’를 포용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시사다.

 ‘선생’이라는 호칭은 어떤가. 국제 사회 어떤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어색한 호칭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양안 정상은 웃으며 서로를 ‘선생’이라 불렀다.

G2(미국과 중국)의 시 주석 입장에서 보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통일이라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G2의 자존심도 잠시 접는 중국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조만간 한반도 통일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치자. 그리고 ‘하나의 한반도’라는 대의를 위해 서로의 호칭을 ‘박여사, 김선생’으로 하기로 했다면 우리 여론은 어떨까. 모르긴 해도 진영논리에 따라 찬반 삿대질이 난무할 것이다.

 중국은 유난히 ‘원칙’을 강조한다. 원칙이라는 등대 없이 거대한 사회주의 항모를 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책에는 ‘평화와 비핵화, 대화’를, 남중국해 분쟁에는 ‘주권 수호’를 원칙으로 들이대며 강한 외교를 펼친다. 대만 정책 역시 1992년 양안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이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해석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베이징의 기존 논리대로라면 대만은 그저 중국 행정 구역상 23번째 성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중국은 양안 정상회담을 거부했다. 한데 이번 회담으로 그 원칙을 깼다. 이 정도면 정책의 유연성 혹은 탄력성 수준을 넘는다. 순간적으로 얼굴을 바꾸는 중국 쓰촨(四川)의 전통극 ‘변검’ 그대로다.

 그러면 시 주석의 이 같은 파격의 뿌리는 어딜까. 얼마 전 중국 안전부 산하 싱크탱크인 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 지즈예(季志業) 원장에게 시 주석 국정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냐고 물었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우스(務實)’라고 했다. ‘실사구시’를 추구한다는 뜻인데 시 주석 철학은 유난히 실천을 강조한 ‘우스’라는 거다. 그가 한마디 더 했다. “공자가 귀신을 논하지 않고 항상 현실을 강조했던 게 바로 우스의 뿌리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우리도 ‘변검의 우스’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일 게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