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사제와 악령이 사투를 벌인다. 언뜻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만한 스토리이지만, 이를 다룬 한 편의 영화가 늦가을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배우 김윤석과 강동원이 주연을 맡은 ‘검은 사제들’(장재현 감독)이다.
7일 만에 200만 넘긴 ‘검은 사제들’
공포감보다 구원 이야기에 집중
김윤석·강동원 흥행 파워도 큰 몫
주제 흐릿하고 싱거운 결말은 흠
5일 개봉한 ‘검은 사제들’은 개봉 첫 주에 160만 명을 극장으로 끌어 들인 데 이어 개봉 7일 만에 관객 200만 명(11월 11일 기준)을 돌파했다. 국내 ‘1000만 영화’ 중 하나인 ‘광해 :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감독)는 개봉 첫 주 127만 명,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은 155만 명을 기록한 바 있다.
‘검은 사제들’은 영화가 개봉되기까지 흥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많이 샀다. 신인 감독이 연출을 맡은 데다, 악령을 쫓는 엑소시즘을 소재로 다뤘기 때문이다. 스릴러와 멜로가 만연한 한국영화 풍토에서 오컬트(신비·초자연) 장르는 입지가 좁다. 단적인 예로, 8월에 개봉한 ‘퇴마 : 무녀굴’(8월 20일 개봉, 김휘 감독)은 관객 동원 12만 명에 그치며 초라하게 퇴장했다. 하지만 ‘검은 사제들’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한국적 오컬트’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위험에 직면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 두 사제를 그린다. 김 신부(김윤석)는 기이한 증상을 보이는 소녀 영신(박소담)을 구하기 위해 구마(악령을 내쫓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식)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의견은 다른 신부들에게 묵살당한다. 결국 김 신부는 ‘비공식적’으로 구마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보조 사제 최준호(강동원)의 도움을 받는다. 두 사람은 소녀의 몸에 똬리를 튼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 구마 의식을 거행한다. ‘검은 사제들’은 단편에서 출발한 영화다.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절대악몽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12번째 보조사제’(26분)가 이 영화의 뿌리다.
영화는 두 신부가 악령과 맞서 꿋꿋하게 펼치는 구마 의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후반의 40분을 의식 장면에 집중했는데, 관객들 사이에서는 “하이라이트가 40분”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에 팽팽한 긴장감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는 얘기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공포감 조성에 매몰되는 오컬트가 간혹 있는데, 이 영화에서 공포는 소품에 불과하다. 구원의 서사를 집중적으로 펼쳐낸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가톨릭의 세계를 그려내며 지적 호기심을 유발한 점도 돋보였다”고 덧붙였다. 또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초현실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리얼리티를 구현했다는 점이 남달랐다”며 “이는 소재를 완벽하게 장악한 감독의 균형감 잡힌 스토리텔링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흥행 보증수표 김윤석’과 미소년 이미지의 ‘강동원 효과’와 더불어 신인 여배우 박소담의 존재감도 화제다. 극 중 악마에 육체를 점령당한 영신의 괴기스러운 모습을 연기한 박소담은 ‘괴물 신인의 탄생’이라 부를 만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원안에 비해 주제 의식이 흐릿해졌고, 결말을 다소 서두르게 매듭지었다는 인상을 남겼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단편은 입시지옥, 군대 내 폭행 등 한국사회의 그늘진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오컬트 장르에 잘 녹여낸 반면, 장편은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주제를 또렷하게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후반부 스펙터클에서 이야기를 더 밀고 나가지 못하고 싱겁게 마무리된 게 아쉽기는 하다”고 말했다. 신선한 소재, 감독의 뚝심 그리고 배우의 열연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검은 사제들’의 흥행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12일 치러지는 2016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수능 특수’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강유정 영화평론가): 신인 감독의 패기가 느껴지는, 에너지가 꽉 찬 영화다. 또 그동안 단역에 머물렀던 박소담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장르의 특성에 안주하지 않고, 반전 같은 얄팍한 기술에도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독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