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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北 옥죄기 수위 높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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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도쿄(東京)의 시부야(澁谷)구에 있는 하토가야 구민회관에서는 지난 21일 저녁 주민 1백여명이 두시간 동안 집회를 열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핵 문제를 성토하고, 정부에 대북 경제제재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날 집회를 마련한 '납치 피해자 구출과 만경봉호를 생각하는 모임'의 대표인 이세다 유카마사(伊勢田幸正)는 "내가 사는 시부야의 주민들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알도록 하기 위해 최근 이 모임을 결성하고 처음 집회를 열었다"며 "납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런 집회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 대북 혐오 여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대북 비판.제재에 나서는 지방자치단체.개인들이 늘어나면서 정부의 압력 수위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같이 분위기가 바뀌어가는 데는 일본 언론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주요 민영방송과 신문에서는 심심치 않게 대북 비판 내용이 보도되고, 서점에도 관련 책자들이 널려 있다.

납치 문제 단체인 '스쿠우(救う.구하자)모임전국협의회'의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부회장(일본기독교대 교수)은 "납치 문제 성토.지원 단체가 늘어 현재는 32곳에 이른다"며 "납치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3백만 시민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바라키(茨城)현 쓰치우라(土浦)시는 지난 14일 조총련 시설에 대한 고정자산세 면제혜택을 중단한 데 이어 도쿄도.이바라키현 미토(水戶).니가타(新潟)시 등도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도야마(富山)현 등과 같이 북한 선박에 대한 안전조사를 강화해 입항을 거부하는 지역도 나오고 있다.

'스쿠우 모임'은 민간 차원에서 국제적인 대북 압력망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올 들어 미국을 방문한 데 이어 납치 피해자 가족.스쿠우 모임.납치 문제 국회의원 연맹회원 등 11명은 23~25일 서울을 방문, 한국의 납치 피해자 가족단체와 모임을 갖고,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 등과 만나 납치 문제 지원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일본 정부의 대북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교토(京都)현의 마에쓰루(舞鶴)항은 일본에서 북한 선박이 가장 많이 입항하는 곳이다.

지난해 일본에 입항한 북한 선박 1천4백여척 중 마에쓰루항에 3백척이 들어와 79억엔 규모의 수출입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달 들어 일본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부품.마약 등의 불법 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북한 선박에 대한 검사를 대폭 강화한 이후 항구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23일 "일본 정부가 대북 압력 수단을 '평상시'와 '북한의 도발시' 등으로 구체적으로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평상시에는 선박 검사 강화, 관련 국가들과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수출입 정보를 교환하지만 북핵 위기가 심각해지면 일본 내 북한 자산 동결, 문화.스포츠 등의 교류 중단 등 초강수가 취해진다. 사실상 북한과의 교류 중단을 뜻한다.

이에 따라 조총련은 이미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 북한이 지난 9일 만경봉호의 운항을 중단해 사람.화물 교류에 많은 불편이 있었다. 만경봉호는 23일에도 입항하지 않았고, 운항을 계속 중단할 전망이다.

조총련 관계자는 "일본 내 보수우익세력이 조총련을 흔들려는 의도"라며 "악의적인 왜곡보도에 대해선 공식 항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민족교육 등 기존사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흔들리는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이 늘어나 조총련 중앙본부가 직원들에 대해 조직 결속 사업을 강화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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