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銀서 돈빌리기 당분간 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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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고객들은 당분간 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 한국은행이 조흥은행에 긴급 자금을 빌려주면서 대출잔액을 늘리면 안된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조흥은행은 일부 고객의 대출금 상환이 들어오면 그 돈의 범위 안에서만 다른 고객에게 대출할 수 있고 추가로 돈을 빌려줄 수는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조흥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하는 기업.개인들이 당장 필요한 돈을 빌리지 못해 자금난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은 23일 파업으로 인한 예금 인출 사태로 현금이 부족해 곤란을 겪고 있는 조흥은행에 5조원을 긴급 지원했다고 밝혔다. 한은이 지원한 것은 한달짜리 유동성조절대출 3조원과 하루짜리 단기자금 2조원이다.

한은 관계자는 "조흥이 유동성대출을 모두 갚을 때까지 고객에 대한 대출잔액을 늘릴 수 없다"며 "유동성조절대출의 만기는 한달이지만 중도에 갚으면 대출잔액 동결은 해제된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월말이라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많을 때여서 조흥은행과 거래하는 기업들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조흥은행과 거래하는 기업 중 일부가 다른 은행으로 주거래은행을 옮길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조흥은행에서는 지난 18일 파업 이후 모두 6조5천억원의 돈이 빠져 나갔다. 조흥 측은 지난 20일 현재 4조2천5백억원의 현금이 부족해 은행들이 단기 자금을 거래하는 콜시장에서 급전을 빌려다 썼다.

조흥은 오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예금 금리를 인상하는 등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흥은 현재 연 4~4.2%인 정기예금의 기본 금리를 0.1%포인트 올리고 지점장의 재량으로 0.2~0.3%포인트의 금리를 더 줄 수 있도록 했다. 이 은행은 또 파업 기간 동안 예금을 중도해지한 고객이 다시 돈을 맡기는 경우 중도해지 이율이 아닌 당초 약정이율을 적용키로 했다.

조흥은행 전 영업점은 이날 오전 9시30분 정상적으로 문을 열고 고객들을 맞았다. 그러나 각 영업점에는 밀린 일을 보러 온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뤘으며, 일부 고객은 파업으로 인한 불편에 대해 직원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한편 조흥은행 위성복 회장과 홍석주 행장 등 등기임원 4명은 24일 예금보험공사에 사표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조흥은행 인수자로 결정된 신한금융지주가 인수 본계약을 하고 주주총회를 열 때까진 이들의 사표가 수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정완 기자

<사진설명>
파업을 끝내고 일터로 나온 조흥은행 본점 직원들이 23일 오전 영업에 필요한 현금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조흥은행은 본점을 포함한 전국 5백57개 영업점(출장소 포함)에서 정상 영업을 시작했다. [김경빈 기자<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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