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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7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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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병들어 누워 있는 노모 이야기가 나오자 하구의 두 눈에 물기가 맺혔다.

"그래도 이런 돈을 받으면 안 됩니다. 혹시 나에게 부탁할 일이라도 있는 거요?"

하구가 정색을 하며 서문경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부탁할 일은 무슨."

서문경이 옥이배의 귀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뜸을 들였다.

"말씀해보시오. 서문대인의 일이라면 돈 같은 거 받지 않고도 도와드려야지요."

"부탁할 일이라고 하기는 뭐하고. 조금 있다 무대랑 시체를 검시하고 염을 할 때 잘 처리해달라는 거요."

"그야 우리 검시관들이 당연히 해야 될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돈을?"

"글쎄 그 돈은 모친 병구완에 보태 쓰시라니까. 내 말은 무대랑 시체를 너무 괴롭히지 말고 대강 염을 한 후에 그냥 솜이불로 덮어 검시를 빨리 끝내주시라는 거요. 죽은 이유가 빤한데 자꾸 시체를 건드리면 유족들 마음이 더 아플 거 아니오?"

하구는 순간적으로 서문경이 왜 무대 유족들까지 챙기려 하나 의구심이 들었다. 무대의 유족이라면 아내와 딸, 동생 정도밖에 없지 않은가. 동생 무송은 멀리 출장을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고. 그런데 하구의 눈앞에 무대의 아내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혹시 서문경이 무대의 아내를 탐하고 있지 않은가 싶었다. 남편이 죽었으니 이제는 무대의 아내를 정식으로 데려올 수도 있는 서문경이 아닌가.

"하긴 유족들 마음이야 어떻게 되든 시신을 함부로 다루는 검시관들이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내가 거느리고 있는 검시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마음은 모르는 법입니다. 검시관들이 겉으로는 하구형 말을 잘 듣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많을 수도 있지요. 이 돈으로 검시관들 회식도 한번 하시고 그러세요."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하구로서는 서문경의 돈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문경의 돈을 부정한 물건처럼 되돌려줌으로써 그를 민망하게 하거나 무안하게 하면 현청에서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서문경이 현감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에게 뇌물을 써서 그들과 친분을 돈독하게 쌓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문경이 말한 대로 노모의 병환 때문에 약값이 보통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 돈은 감사하게 받아 잘 쓰겠습니다. 하지만 이 돈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갚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무대랑 시신을 잘만 처리해주면 그걸로 나에게 갚는 것이 되는 거요. 그리고 일이 끝난 후에 내가 또 톡톡히 사례하리다."

또 사례를 하겠다니. 하구는 더욱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대의 시신이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빨리 검시를 해보고 싶었다.

술집을 나와 서문경과 헤어진 하구는 걸음을 재촉하여 무대의 집으로 가보았다. 금련이 상복으로 흰 옷을 입고 하얀 종이띠를 이마에 두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좀 헝클어져 있고, 두 눈도 약간 충혈되어 있었으나 하얀 상복에 싸인 금련의 모습은 평상복을 입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하구가 금련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는데 금련의 매혹적인 모습에 어찔 현기증이 일었다. 서문경이 무대의 유족을 챙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기도 했다.

중들의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려 하구가 검시관들을 데리고 무대의 시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신의 머리 부분을 덮고 있는 흰 비단을 걷어올려 얼굴부터 조사해보았다. 얼굴 전체의 빛깔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고 입술은 진한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 핏줄이 터진 눈망울들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형용을 하고 있었다. 하구가 급히 손톱을 살폈다. 손톱은 이미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독살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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