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읽기] 치솟는 카드 연체율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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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카드업계 사람들은 7월이 다가오면서 요즘 긴장과 초조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금융감독원이 7월부터 카드사에 대한 대대적인 검사에 나서 '적기시정조치' 대상 카드사를 추려낼 예정이기 때문이죠.

적기시정조치란 '조정자기자본비율(총조정자기자본/총조정자산)이 8%에 미달'하거나 '최근 1년간 적자이면서 분기말 연체율이 10% 이상'인 카드사에 대해 금감원이 내리는 일종의 '철퇴'입니다.

적기시정조치가 내려진 카드사에는 부실자산의 처분, 특별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담은 경영개선 권고 조치가 내려집니다.

업계에서는 경영개선 권고는 경영개선 요구나 경영개선 명령보다 강도가 약하지만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사실상 예비 사형선고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시장에서 부실 카드사로 낙인 찍히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카드사들은 최근 몇달간 적극적인 증자 등 자본 확충을 통해 대부분 조정자기자본비율은 8%를 넘길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 1년간 대부분의 카드사가 적자이기 때문에 돌파구로 연체율 줄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영업인력을 대거 채권추심 분야에 배치하는 것은 기본이고, 헐값을 감수하면서 연체채권을 적극 매각하는 기법도 활용하고 있어요. 그러나 연체율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르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카드업계 임원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난 4월에 '그분'이 법정에 출두한 뒤 연체율이 더 올라간 것 같다"구요.

그분이란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칭한 것입니다. 2천2백4억원의 추징금 중 1천8백90억원을 미납한 全전대통령은 지난 4월 28일 법정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은행 예금 29만1천원뿐"이라고 주장해 세간에 화제가 됐지요.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는 전직 대통령이 무슨 돈이 있어서 골프를 치는거냐는 비난 여론이 비등했지만 카드업계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서운해 합니다.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서 자신만만하게 "나는 무일푼"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카드 대금 연체자들도 용기(?)를 얻어 '나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온다는 게 이 임원의 논리입니다.

논리의 비약이 있고, 어찌 보면 말도 안되는 푸념인지도 모르겠지만 카드사들이 애꿎은 전직 대통령을 원망한다는 얘기는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겠죠.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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