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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게 달리는 '서민의 발' 마을버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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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가 위태롭게 달리고 있다.

마을버스 기사의 주간 평균 근로시간은 51시간(일 평균 8.5시간, 주6일 근무)에 달한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간 근로시간 40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다. 최대 연장 근로시간인 52시간보다 고작 1시간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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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운수에서 3년간 근무한 김정호(52)씨.

주야간 교대 근무 때 발생하는 이른바 ‘꺾기’는 안전 운행의 걸림돌이 된다. 통상적으로 마을버스는 오전(첫차~정오)과 오후(정오~막차) 두 팀으로 나눠 주간 단위로 교대한다. 오후 근무에서 오전 근무로 넘어가는 날에는 예비 기사를 투입하고 휴일을 주는 게 원칙이다. 대다수의 업체는 이를 지키지만 일부 업체에서는 자정까지 일한 기사가 이튿날 새벽 5시 전부터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마을버스 기사는 이 같은 근무형태를 두고 '꺾기'라고 부른다. 관악구에서 3년간 마을버스 기사로 근무한 김정호(52) 씨는 “한 달에 두 번 꼴로 꺾기 근무를 했다”며 “잠이 부족해 운전 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잦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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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운전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근무 강도도 높다. 촉박한 배차시간에 맞추다보면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다. 경력 20년의 안금열(59) 기사는 "배차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화장실 가는 걸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버스 기사 채용 과정에서 인건비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을버스 운수 업체는 기사와 근로 계약을 맺기 전 운전 실력을 파악하는 명목으로 실무 교육을 한다. 노선을 익히고, 선임자가 보는 가운데 직접 운전대를 잡기도 한다. 차를 정비하고, 차고지를 청소하는 등 잡일을 떠맡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정식 채용이 안됐다는 이유로 급여를 받지 않는 게 운수 업계의 관행이다. 김 씨는 “45일간 운행은 물론 제설차 정비, 차고지 청소 등 실질적인 노동을 제공하면서도 급여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법률원 박용원 노무사는 “노동을 제공하면 실질적인 근로관계가 성립한다. 급여를 지급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마을버스 운수업체 관계자는 “교육기간에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 중인 기사가 혼자 운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명했다.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는 처우와 임금에서 격차가 크다. 서울시 시내버스는 2004년 준공영제로 전환하며 근로 여건이 크게 좋아졌다. 주 5일,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연봉은 4200만~4800만원에 이른다. 마을버스는 2400만원으로 절반 수준이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사회공공연구소가 2014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버스 한 대당 기사 수의 비율은 시내버스가 2.6명이며 마을버스는 2.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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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에 위치한 마을버스 차고지.

인기가 높은 시내버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을버스 운전 경험이 1년 이상 필요하다.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마을버스 기사에 지원자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일부 악덕 업체에서는 이를 악용해 보험 처리를 회피하고 사고 책임을 기사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마을버스 기사는 “사측에 보험처리를 요구했더니 회사를 관두라는 압박이 들어왔다”며 “결국 월급과 맞먹는 접촉사고 합의금 200만원을 자비로만 지불해야 했다”고 말했다. 무사고 경력을 만들기 위해 마을버스 기사가 사고 처리를 자비로 부담하기도 한다. 마을버스 업체 측은 “큰 사고의 경우 회사와 기사가 함께 부담하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회사보험을 통해 처리한다”고 해명했다.

서울경기지역 마을버스노조 서석태 사무국장은 “서울시에서 일부 재정 지원을 하지만 효과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서 국장은 재정지원의 근거가 되는 운송원가 계산부터 수정해야 한다며 “기사의 연봉을 3000만원 수준으로 책정해 운송원가를 인상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내버스는 운송원가가 70만5407원인데 비해 마을버스는 39만4346원이다.

정현웅·최영권·하준호·김다혜·양길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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