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쟁 같은 난민의 삶에 위로를

중앙일보

입력

[기획]전쟁 같은 난민의 삶에 위로를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디판’

기사 이미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절망의 끝에서 서로를 끌어안는다. 올해 칸국제영화제는 이 숭고한 순간을 그린 영화에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내줬다. ‘디판’(원제 Dheepan, 10월 22일 개봉)은 21세기 유럽 사회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망명과 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예언자’(2009) ‘러스트 앤 본’(2012) 등을 통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동시대 작가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신작이다. 현실적 주제를 날카롭게 응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포용력이 빛나는 영화다.

‘디판’은 지난 5월 열린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차지했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칸의 최고 영예를 차지할 만한 작품인지에 대해서 이견을 내놓기도 했다. 언론은 ‘절제미가 있고 힘이 넘치는 영화지만, 오디아르 감독의 작품 중 최고작은 아니’(가디언)라는 데 대체로 입을 모았다.

사실 ‘디판’이 영화제 내내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건 아니다. 오히려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주인공으로 언급되던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의 화제성,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이 던진 통렬한 충격,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자객 섭은낭’으로 증명한 미학적 성취와는 거리가 다소 있는 영화였다. 실제로 오디아르 감독의 전작을 떠올릴 때 전에 없이 설명적이고 장르적이라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수상 결과가 발표된 직후에는 다양성을 존중한다던 올해 영화제가 결국에는 자국인 프랑스 영화를 선택했다는 일부 비판에도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칸이 ‘디판’의 손을 들어준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듯 보인다. 이 영화는 현재 유럽 사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난민과 망명을 정면으로 다룬다. 동시대 사회 문제에 대한 영화적 응답. ‘디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 난민의 상황보다 감정에 집중하다

기사 이미지

이 영화의 제목은 남자 주인공(안토니타산 제수타산)이 새롭게 얻은 이름이다. 고국 스리랑카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피해 망명을 택한 그는 브로커로부터 몇 개월 전 죽은 사람의 신분증을 산다. 실제 신분증 주인의 서류에는 아내와 어린 딸이 올라 있다. 이에 디판은 대피소에서 만난 여자 얄리니(칼리스와리 스리니바산) 그리고 부모가 없는 소녀 일라얄(클로딘 비나시탐비)과 함께 프랑스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 가족 행세를 해야 하는 세 사람.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낯선 환경이지만, 디판은 세 사람이 함께 머무는 다세대 주택의 관리인 직을 맡으면서 생활 터전을 닦아나가려 애쓴다.

처음에 오디아르 감독은 사소한 계기에서 새로운 이야깃거리의 실마리를 떠올렸다고 한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다가와 꽃을 파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그들이 언제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전혀 몰랐다. 그 궁금증을 구체적으로 품기 시작했을 때, ‘디판’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감독의 말이다.

그가 머릿속에 떠올렸던 궁금증은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가 되어 극 초반에 등장한다. 스리랑카를 탈출하려 조그만 배에 짐짝처럼 몸을 싣는 사람들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돌연 거칠게 그 컷을 닫아버린다. 그리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몇 개의 작고 예쁜 불빛을 비춘다. 시간이 지나면, 그 불빛이 다름 아니라 디판이 쓴 야광 머리띠에서 발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조악한 머리띠를 하고, 열쇠고리와 라이터 같은 기념품을 주렁주렁 단 채 어둠 속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 디판의 이미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내전 희생자들의 시체를 태우며 피로와 환멸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어느새 조금 다른 얼굴이 되어 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사람 특유의 결연함이 엿보이는 것이다.

오디아르 감독은 난민들이 처한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이처럼 상황이 그들에게 미친 영향과 그때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기능하는 스리랑카 내전(1983~2009, 정부군과 스리랑카 내 힌두계 타밀족 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은 거의 없다. “내전에 대해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게 오디아르 감독의 설명이다.

조금씩 웃음도 찾고 얼추 가족의 모습을 갖춰나가던 세 사람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들이 터를 잡은 곳이 갱단이 활개를 치는 우범지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판은 스리랑카에서 함께 반군으로 활동하던 이를 만난 뒤 조국을 등졌다는 비난에 휘청거린다. 목숨을 걸고 망명을 택했지만, 형태만 다른 또 하나의 전쟁터에 내던져진 이들. 오디아르 감독은 그들의 선택과 감정적 파장을 찬찬히 따라간다.

‘디판’이 그리는 유럽 사회는 망명을 택한 이들이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 꿈이라는 것이 총성과 비명 가득한 곳이 아닌, 웃음이 가득한 삶의 터전을 원하는 수준의 소박한 바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감독이 바라보는 곳은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 안에서 시름하는 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그늘진 구석이다. 이들에게 삶이란 곧 전쟁의 다른 이름이다.

- 절망적인 현실을 감싸는 인간애

기사 이미지

오디아르 감독의 연출 데뷔작 ‘그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라’(1994)는 악연으로 얽혔던 밑바닥 인생들이 사랑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평행 구조로 선보였던 영화다. 이후에도 감독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 왔다. 2009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대표작 ‘예언자’에서는 감옥에서 냉혹한 인생의 섭리를 배우며 성장하는 열아홉 살 소년 말리크(타하르 라힘)의 이야기를 그렸고, ‘러스트 앤 본’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다리를 잃은 범고래 조련사 스테파니(마리옹 코티아르)와 삼류 복서 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절망의 끝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디판’에는 감독이 최근 연출작에서 보여준 시각과 그가 선호하는 방식이 비슷한 형태로 녹아 있다. 강렬한 액션 시퀀스로 변모하는 후반부는 ‘예언자’와 닮았고,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삶의 결함을 지닌 이들이 유대감을 나누며 서로 껴안아 가는 과정은 ‘러스트 앤 본’을 닮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디판’은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을 녹여 만든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디아르 감독은 극 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하나의 답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선 폭력적인 상황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영화의 폭력은 그 자체로 물리적인 것일 뿐 아니라 인물의 감정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무언가의 가치를 상기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더욱 단정적으로 표현하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에 가깝다. 오디아르 감독은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명백히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폭력이 등장하지만, 그 형태는 처음과 끝이 완전히 다르다. 주인공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싸우다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사랑이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디판’은 한 편의 거대한 멜로 드라마처럼 보이는 영화가 맞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모든 고난을 타개하는 열쇠라는 낭만적인 답을 내놓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은 보다 폭 넓은 의미의 ‘인간애’에 가깝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보듬고 보살피는 마음. 그 숭고한 가치가 만만치 않은 울림을 선사한다. 현실인지 판타지일지 모를 결말 역시 차가운 현실에 감독이 보내는 따뜻한 위로일 테다.

글=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