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덕성·책임성 잃은 노동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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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흥은행 노조파업으로 예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영업이 마비되는 혼란 속에서도 정부가 법과 원칙에 의한 확고한 대처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어제 최근의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책임성을 잃고 있다고 우려하며 노조의 부당한 주장에는 당당히 대응해나갈 것을 밝혔다.

노동운동이 과거 생존권이나 사회민주화운동 차원에서 이뤄질 때와 달리 정당성이 결여돼 있는 만큼 불법파업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되돌아보면 현 정권같이 출범 몇달새에 노사문제에 급격한 압축경험을 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盧대통령이야말로 그 장본인으로 당선자 시절에 "(노사간) 사회적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첫 일성(一聲)에 비교해보면 이런 언급은 큰 변모다. 그동안에도 '노동문제에 대한 시각은 노조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긴 했으나 현 인식에 이르기까지 길게 에둘러 온 셈이다.

현 정부의 친노정책이 한껏 노조의 기대수준을 높인 가운데 노동계는 합리적 수준을 넘는 강경투쟁을 거듭해왔다. 조흥은행 파업은 그 전형으로 국민의 공감대와는 거리가 멀다. 경실련마저 '설득력 없다'고 나선 비판은 그래서 정말 귀담아 들어야 할 일이다.

강성노조가 결국 가는 길은 유럽 국민의 달라진 노조관에도 잘 나타난다. 프랑스에선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파업이 국민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고, 독일 역시 노동자가 경영에도 개입하는 오랜 친노정책으로 독일경제가 평등병으로 곪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금 같은 우리의 적대적 노사관계로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 한 발짝도 더 내딛기 힘들다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숱한 시행착오로 많은 것을 잃은 뒤 궤도수정에 나선 나라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선진국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야말로 현정부의 향후 노동정책을 가름할 분수령임을 알고 위 아래 할 것 없이 달라진 인식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