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구획정위 3(여)-3(야)-3(선관위)으로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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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은 춤을 추었다. 17~19대 총선은 모두 선거일을 겨우 한 달여 앞두고서야 선거구가 정해졌다.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외부인으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자문위가 있었지만 말 그대로 자문이었다. 법적 구속력이 없으니 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여야가 마음대로 칼질을 했다. 이런 폐해를 없애보려고 이번 총선에 대비해 만든 게 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다. 그런데 이번에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법에 따르면 획정위는 총선 6개월 전(10월 13일)까지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국회 정개특위에서 이견을 달면 다시 조정해 최종안을 만든다. 이 안에 대해선 추가 수정이 불가능하고 국회는 본회의 표결에 부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획정위는 시한 내에 안을 만들지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 사실상 “우리는 못하겠으니 국회가 마음대로 정하라”는 것이다. 위원장을 맡은 김대년 선관위 사무차장은 어제 획정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여야가 지난 5월 새로운 각오로 독립 획정위 제도를 만들었는데도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 구조적으로 합의가 어렵게 돼 있고 이런 공간 속에서 획정위원들이 여야의 대리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법에 의하면 획정위원 9명은 여당 추천 4명, 야당 추천 4명, 그리고 선관위 인사로 돼 있다. 그런데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로 하는 바람에 꽉 막혔다. 위원들이 여야 성향별로 똘똘 뭉쳐 ‘6명 찬성’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막판에 회생시키는 농촌 선거구 1석을 놓고 의원들은 갈렸다. 여당 성향은 강원, 야당 성향은 호남을 고집했다. 선관위 출신 위원장은 결정권을 가지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국회가 이런 구조로 획정위를 만든 것은 결국 최종 결정권을 자신들이 가지겠다는 고도의 포석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여야는 법도 이렇게 엉성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기준을 정해달라는 획정위의 거듭된 요청도 뿌리쳤다. 만약 여야가 국회의원 정수와 지역구-비례대표 비율을 확정해 넘겨주었다면 획정위는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기준이 유동적이니 획정위는 자신들의 안도 결심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왔다. 여야는 선거구 획정뿐 아니라 공천제도에서도 방황하고 있다. 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선거구와 공천 방식이 안갯속에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능한 정치 신인이 확실한 계획을 세울 수 있나. 이런 혼란은 국가의 정치 자산에 대한 손해다.

 여야는 속히 비례대표, 권역별 의석 배분, 농어촌 지역구 배려 방안 등에 합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획정위가 명실상부하게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여야 추천을 3명씩으로 하고 나머지 3명은 선관위에 주어 중립적인 선관위가 최종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