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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관행에 얽매일까봐, 패션 전공자 두지 않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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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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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진 조셉 앤 스테이시 대표가 서울 성수동 본사 사무실에서 그동안 출시한 가방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가방은 백 대표가 세계를 누비며 발굴한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었다. 이 회사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방·액세서리 브랜드다. 그는 “패션 브랜드가 디자인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창업을 꿈꾸는 패션 디자이너 사이에서 ‘100억 인터넷 쇼핑몰’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미디어에 연매출 100억원을 올린다는 쇼핑몰 최고경영자(CEO)가 차고 넘쳤다. 성공하는 쇼핑몰엔 법칙이 있는 듯했다. 연예인(혹은 연예인급 외모의) CEO, 최신 유행을 반영한 디자인, 싼 가격, 비현실적 몸매의 피팅 모델, 대규모 협찬 마케팅…. 그런 브랜드 상당수가 최근엔 자취를 감췄다. 한 브랜드가 조금만 인기를 끌면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제품을 더 싼값에 내놓는 쇼핑몰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다.

<25> 가방은 품질이 최우선, 백동진 조셉 앤 스테이시 대표

 ‘외형 불리기’에 나섰던 업계가 ‘옥석 가리기’에 들어간 가운데 품질에 집착하는 역발상 전략으로 고속 성장한 패션 브랜드가 ‘조셉 앤 스테이시’(Joseph & Stacey)다. 백동진(40) 대표가 2013년 1월 창업한 이 회사는 가죽 소재 가방이 주력 제품이다. 해외 브랜드 편집 쇼핑몰인 ‘위즈위드’(www.wizwid.com), 디자이너 브랜드 쇼핑몰 ‘W컨셉’(www.wconcept.co.kr) 등의 가방·액세서리 분야에서 지난해 판매 1위를 지켜냈다. 대기업 브랜드도 한 아이템을 1만개 파는 경우가 드문데 이 회사는 1만개 이상 판 제품을 3개 갖고 있다. 덕분에 창업 첫해 17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48억원까지 뛰어올랐다. 올해 매출은 80억원을 바라본다. 직장인 김혜진(29)씨는 “조셉 앤 스테이시는 2030 ‘패피’(패션피플) 사이에서 떠오르는 핫 아이템”이라며 “일반 인터넷 쇼핑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소재의 제품이 많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패션 전공자가 아니다. 2005년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동기들이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 같은 제조업체에 디자이너로 취업할 때 그는 디자인 컨설팅을 하는 프리랜서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젊음’ 하나만 믿고 시작한 ‘도전’이었다. 클래식 공연부터 건축까지 일단 ‘디자인’이란 이름이 붙은 일감은 닥치는 대로 찾아 일했다. 그러다 맡았던 한 패션 브랜드에 매력을 느껴 디자이너 1명, 상품기획자(MD) 1명과 함께 조셉 앤 스테이시를 창업했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어서였을까. 출발부터 튀었다. 그가 집착했던 건 디자인이 아니라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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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들은 제품을 만들 때 ‘콘셉트를 어떻게 할까’부터 고민합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주제죠. 저는 존재하지도 않는 걸 고민하는 게 싫었어요. 일단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소재부터 차별화하자고 판단했죠.”

 그는 창업을 준비하던 2012년부터 직접 질 좋은 가죽 수배에 나섰다. 서울 성수동·신설동에서 가죽 원단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만져보고, 당기고, 불로 비추고, 찢어보고, 태우고…. 가볍고 튼튼한 가죽을 찾는 실험에만 5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았다. 그는 “시제품 1개를 만드는 데 50만원이 드는데 가죽을 사는 데는 1만원 밖에 안드는 경우도 많다”며 “비용이 더 들어가는 시제품을 많이 만들기 보다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원단 소재에 많이 투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단을 찾아 해외를 누비기도 했다. 1년에 8~10번 해외로 나가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달씩 미국·브라질·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이탈리아·프랑스·일본의 가죽 공장과 원단 전시장에 들렀다. 여기서 ‘소가죽’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가 제품을 홍보할 때 ‘캘리포니아산 1등급 송아지 제일 윗 등 가죽을 썼다’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다. 그는 “최고급 가죽은 ‘지금껏 내가 만져본 모든 가죽이 인조 가죽이었구나’하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며 “디자인은 베낄 수 있어도 소재는 베낄 수 없기 때문에 가죽만큼은 최상급을 썼다”고 설명했다.

 원단이 좋더라도 가공이 엉망이면 물거품이다. 국내에서도 난다긴다 하는 콧대 높은 가죽 가공 공장 수십곳을 찾아다녔다. ‘을’의 입장인데 해외 현지에서 본 가죽의 색감·질감을 그대로 살려달라며 꼬치꼬치 요구하다 보니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당신은 가죽에 미친 사람 같다. 말이 통한다”며 반기는 공장도 나왔다. 그런 공장만 붙잡았다. 그는 “루이뷔통은 인도네시아의 악어 공장을 인수할 정도로 좋은 소재를 구하는데 신경을 쓴다”며 “한국에선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대기업조차 디자인에만 신경쓰지 소재에 대해선 관심을 덜 갖는다. 그런 통념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조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길동·상계동, 경기도 구리에 생산 공장을 구했다. 조셉 앤 스테이시 가방만 전담해 만들도록 했다. 대신 업계 관행대로 생산량에 따라 급여를 주는 게 아니라 월급제로 운영했다. 돈은 더 들었지만 공장 직원들에게 소속감을 줬다. 그는 “사실상 직영 공장이나 다름없다. 다양한 제품을 파일럿 형태로 만들어 보는 경우가 많다”며 “직원들이 한 달에도 서너번씩 공장에 들러 공정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을 버린 건 아니었다. ‘질리지 않는 클래식 디자인만 고집한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 나름 터득한 ‘게임 체인저’의 ‘룰(Rule)’이었다.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대신 제품 수를 10여개로 확 줄였다. 소재로 공격했다면 디자인으로 수비한 셈이다. 그는 “회사에 패션 디자이너가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뜨리려다보니 33명의 직원 중 패션 전공자가 한 명도 없다”며 “산업·건축·환경·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마케터, 제품 개발자까지 전 직원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씩 디자인 회의를 연다”고 말했다.

 주력 제품 가격은 상대적으로 고가인 20만~30만원대로 정했다. 명품 가방과 견줄 만한 150만원대 가방도 선보였다. 그러면서 마케팅에 군살을 확 뺐다. 인터넷 제품 소개란을 유명 피팅 모델로 도배하는 대신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YKK 지퍼만 쓰고 지퍼줄은 다른 브랜드를 쓰는 게 아니라 전부 YKK를 쓴다’는 식으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연예인을 동원한 협찬·영업도 안 했다”며 “입소문을 타고 백화점과 가로수길 같은 번화가 편집숍 35곳, 인터넷 쇼핑몰 19곳에 입점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매출이 전체의 75%에 달한다.

 그는 옷 장사는 구멍가게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래서 회계법인을 선정해 매달 재무제표를 만들고 지난해엔 회계 감사도 받았다. 그는 “‘디자인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이 정작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며 “패션 업체는 수익까지 디자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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