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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휴대폰·돈의 힘이 ‘70년 철옹성’ 노동당 위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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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4 면

북한은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열병식을 열고 창당 이후의 성과와 업적을 과시했다. 하지만 조선노동당은 인민의 먹고사는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실패한 정당이란 혹평을 받는다. 북한은 김일성이 1926년에 세웠다는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선노동당의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45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계기로 친소 공산당원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실질적 모체다. 그래서 북한은 이때를 기점으로 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한다. 조선노동당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독재의 수족 역할을 해왔다. 46년 8월 1차 당대회가 열렸다. 80년 10월 6차 당대회를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송봉선 전 국정원 북한조사실 단장

북한을 장기간 연구해온 전문가들이 조선노동당의 지나온 70년을 비판적으로 분석·평가하고 앞으로 어떤 운명을 걷게 될지를 전망했다. 송봉선 고려대 북한학과 겸임교수는 73년부터 27년간 국가정보원에서 북한문제를 다뤘다. 학계로 옮기기 전에는 국정원 북한조사실 단장으로 활약했다. 국정원 자문위원, 북한연구소 이사로 활동 중이다.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에서 성골로 분류되는 빨치산 혈통이다. 조부(현용택)가 김일성의 첫 부인 김정숙과 같은 부대에서 활동하다 전사했다. 부친(현철규)은 함경남도 도당 비서를, 숙부(현철해)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거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2012년 정치국원 겸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차관급)으로 발탁됐다. 현 연구위원은 김일성대 영문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96년 잠비아 주재 외교관으로 일하다 탈북했다.

현성일 전 잠비아 주재 북 외교관

공산주의 가치가 수령절대주의로 변질-창당(45년 10월 10일)에서 건국(48년 9월 9일)까지 3년이 걸린 이유는.▶송봉선 교수(이하 송)=46년 8월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 이후 48년 3월까지 연안파 김두봉이 당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때까지 김일성은 당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이후 소련의 지원이 김일성 집권에 절대적 도움을 줬다. 소련은 남로당 계열인 박헌영, 기독교민주당의 조만식 그리고 김일성 등 3명 중에서 소련군 소좌 출신인 김일성을 낙점했다.▶현성일 연구위원(이하 현)=당을 만든 뒤 46년 2월 임시정부 형태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거쳐 48년 9월 남북 총선거 형식으로 북한 정권을 수립했다. 광복 이후 북한에서 만주 빨치산 세력과 국내 공산주의 세력, 소련파와 연안파, 남로당파 등 여러 정치세력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권력투쟁을 벌였다. 결국 소련군의 절대적인 지원과 만주 항일투쟁 경력을 내세운 김일성이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고 권력자로 등극했다.


-조선노동당이 70년간 추구해온 가치는.▶현=수차례 개정된 당 규약을 보면 노동당의 성격은 인민의 대표자→노동계급의 선봉부대→항일혁명전통의 계승자→김일성에 의해 창건된 당→김일성·김정일의 당 등으로 변했다. 당의 지도사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주체사상으로 달라졌다. 당의 궁극적 목적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주체혁명 위업의 승리로 바뀌었다. 당 이념의 핵심은 당초의 공산주의적 가치에서 절대군주제 성격의 수령절대주의로 변질됐다.▶송=‘김씨 북한’을 신권체제의 사교(邪敎) 집단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북한을 주체사상의 이념적 종교집단으로 보고 세계 10대 종교의 하나로 간주했다. 북한은 ‘김일성신(神)’을 믿으면서 그 자손들이 대대로 교주(敎主)로서 북한을 지배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김일성의 백두혈통만이 수령이 되고 김씨가 영원히 북한을 지배하는 것이 그들의 가치관이다.


김일성은 신, 김정일은 교주인 ‘신정체제’-70년간 북한에서 스탈린식 피의 숙청이 계속됐는데.▶현=김일성의 유일지배체제와 김정일에 의한 수령절대주의체제 구축 과정에서 스탈린식 숙청이 재현됐다. 모든 정적이 제거된 김정은 시대에는 수령에게 불손하거나 지시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숙청이 가능한 상황이다.▶송=스탈린은 20만 명을 학살했다. 비밀경찰을 동원해 공포정치를 했다. 김정은도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를 동원해 간부와 주민을 철저히 감시한다. 김정은의 광기는 스탈린과 비교된다.


-김씨 3대 세습은 어떻게 가능했나.▶송=종교적 리더십이 작용했다. 김일성은 신이 되고 김정일은 신의 대리인인 교주가 됐다. 김일성의 신권적 지배체제 확립을 위해 노동당을 통해 주체사상과 유일사상 10대 원 칙을 동원해 상시적으로 모든 주민의 의식구조와 생활을 지배해왔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르면 수령은 뇌수, 당은 심장, 인민은 몸의 각 부분이다.▶현=70년 김씨 왕조 유지 비결은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사회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한 덕분이다. 여기에다 선전선동부의 정교한 사상교육과 세뇌 기능, 국가안전보위부 등 공안·사찰 기구의 강력한 감시와 가혹한 공포정치는 북한 주민을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격리·폐쇄했다.


-조선노동당 집권 70년을 평가하면.▶송=김씨 3대의 사당(私黨)으로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의 손발 역할을 충실히 해온 것이 당 역사의 전부다. 조선노동당은 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사회주의 정당과는 완전 다르다. 당은 김씨 3대 세습에 유용한 수단이었지만 북한 주민에게 당은 모든 행동을 통제한 질곡의 사슬이었다.▶현=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 보면 동유럽 사회주의와 중동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와중에 지금까지 수령 1인 지배체제 유지에 성공한 정당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조선노동당은 인민을 기아와 가난으로 몰아넣고 북한 사회를 인권과 민주주의의 불모지로 만든 실패한 정당이다.


김정은 4년 숙청 규모는 김정일 때의 7배-김정은의 집권 능력과 권력 기반은 안정적인가.▶현=김정일이 생전에 만들어 유산으로 물려준 노동당과 공안기구의 강력한 통치시스템과 권력층에 대한 공포정치, 주민들에 대한 스킨십 정치 등 나름의 리더십 덕분에 지난 4년간 외형적으로는 체제 안정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권력층에 대한 공포정치와 통치자금 고갈 등으로 지배계층의 공동운명체 의식이 훼손됐다. 강경일변도 대외정책 때문에 대외관계가 나빠지고 국제 제재가 이어지면서 체제 불안정을 키우고 있다.▶송=한마디로 불안정하다. 김정은 등장 이후 4년간 70여 명을 처형했다. 김정일 집권 초기 4년간 10여 명을 처형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측근을 내쳤다. 이로 인해 당 간부들 사이에서 김정은의 지도력에 비판적인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김정은은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처형한다. 처형 방식도 잔인·포악해졌다. 당·군 간부들은 빈번한 처형에 따른 공포감 때문에 아부·눈치보기·몸사리기·복지부동·보신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당·정·군 관계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송=김정일은 군을 우대하는 선군(先軍)정치를 하면서 당 활동을 소홀히 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김일성 시대처럼 당 우위 정책을 펴고 있다. 김정일 시대와 달리 정치국에 변화가 보이는데 위원 12명 중 박봉주 총리 등 3명이 경제 관료 출신이다. 심각한 경제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김정일 시대에 유명무실했던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김정은 시대에는 주요 군사문제를 결정하는 핵심 기구로 활용되고 있다.▶현=선군정치 시절에 군부의 위상과 역할, 기득권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군이 당 위에 올라섰던 것은 아니다. 선군정치하에서도 군에 대한 당, 특히 조직지도부의 장악과 통제, 인사권은 유지됐다. 군 총정치국을 통한 군에 대한 당의 영도는 지속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당의 위상과 역할이 회복된 이후에도 북한은 선군정치와 군사제일주의를 지속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시장이 곧 당” … 주민 시장 의존도 심화-북한 주민들 사이에 “시장이 곧 당(黨)”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은.▶송=북한 전역에 들어선 장마당(시장)이 북한 당국의 통제권에서 벗어났다는 분석이 있다. 당국의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장사를 통해 먹고사는 장마당 세대는 자본주의 사회에 관심이 많고 김정은 체제에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아직 조직적으로 북한 체제를 흔들 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장마당 세대는 결국 북한을 변모시킬 중요한 세력이다.▶현=시장이 곧 당이라는 말은 결국 당보다 시장이 북한 주민들의 삶을 보장하고 결정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권력층과 주민들의 시장 의존도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시장 활성화는 북한 사회에 황금만능주의·개인주의·자본주의사상이 유입되고 빈부격차, 권력층의 부패를 초래한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 약화와 개혁적 변화 욕구를 키우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는데도 북한 정권이 망하지 않은 이유는.▶송=노동당 유일지배 체제를 근간으로 철저한 신권적 수령독재가 북한 주민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3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는데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한은 자력갱생 경제라서 주민들이 상대적 빈곤감이나 박탈감 없이 정권에 순응하는 체제다.▶현=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취해진 일련의 경제관리개선 조치와 시장 활성화, 북·중 무역 확대 등으로 경제와 주민생활이 부분적으로 호전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체제 내구력은 경제와 생활수준이 아니라 권력층의 부패와 공권력 약화, 주민의식 변화에서 기인한다. 북한 정권의 내구력은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조선노동당의 수명은 얼마나 될 것으로 보나.▶송=당분간 체제를 유지할 것이다. 보안 기관이 건재하고 이념으로 무장된 노동당 당원 400여만 명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북한 내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북한 정권의 장기 생존은 장담도 예단도 할 수 없다. 400개 장마당을 통한 빠른 정보 유통, 500만 대 휴대전화, 한류 유입, 자본주의화한 30만 명의 상류층, 전주(錢主)의 출현 등은 체제 안정을 위협할 변수다.▶현=소련 공산당이 약 70년 만에 무너진 것은 스탈린 사후 개인독재와 숭배를 거부하고 집단지도체제가 허용된 영향이 크다. 61년 4차 당대회 때까지는 북한에도 당내 토론이 있었다. 조선노동당의 장래는 수령 독재체제가 집단지도체제로 이행되고 당내에서 자유로운 의사개진과 정책토론이 가능해지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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