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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상사’는 회사위기 주범 … 당신은 어떻습니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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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14면

직장인들은 하루 8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지낸다. 야근에 회식까지 포함하면 10시간 이상을 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회사생활에서 상사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상사가 ‘나쁜 상사’라면 직장생활은 고달파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나 동료는 관계를 끊거나 멀리할 수 있지만 상사는 내 밥줄을 쥐고 있다. 싫어도 따라야 한다.


문제는 나쁜 상사가 회사 분위기를 해치고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나쁜 상사라는 학술적 개념은 없다. 어떤 직원에게는 좋은 상사라는 평가를 받지만 다른 직원에게는 나쁜 상사로 여겨지는 사람도 다반사다. 다만 단순히 부하직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걸 넘어 몰상식한 말과 행동으로 모멸감을 주는 사람은 나쁜 상사임에 틀림없다. 또 능력대로 직원을 대하지 않고 자기 성질에 내키지 않으면 폭언을 퍼붓거나 인사발령을 낸다. ‘이거 다시 해 와’라고 해도 될 것을 ‘너 한 번만 더 이러면 모가지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나쁜 상사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 중간 간부의 말에는 나쁜 상사의 폐해가 그대로 담겨 있다. “잘한 건 자기 덕이고 잘못된 건 후배 탓을 한다. 소문도 낸다. 자기만 알고 있는 걸 가르쳐 주지 않고, 모르겠다고 하면 ‘왜 모르느냐’고 사람들 앞에서 질책한다. 온갖 일을 시켜놓고는 연봉협상 때는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고 한다. 개인적인 일을 시킬 때도 있다. 이런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중소기업 30대 과장)


BBQ 활용해 회사 위험요소 제어 이런 나쁜 상사는 어느 회사에나 있다. 글로벌 현상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게 상사와 부하 사이의 개인적 인간관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쁜 상사의 거친 언행은 직원들의 근로의욕과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 직원들의 창의적인 의견 개진을 막고, 조직 내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직원 관리를 해야 할 자리에서 자기 파벌을 만들어 권력을 휘두르는 간부에겐 회사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이 앞서게 마련이다. 경력관리 전문가인 헤더 허먼은 ^능력이 아니라 사내정치로 직원을 평가할 때 ^지시만 하고 소통이 없을 때 ^직원 불만이 높아질 때 ^권력을 남용할 때 ^책임을 직원에게 떠넘길 때 등 5가지 경우에 관리자급 인사를 경질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미국 컨설팅 업계에선 ‘나쁜 상사 지수(Bad Boss Quotient)’라는 계량지표를 만들어 위험수위를 넘지 않도록 제어하기도 한다. 지난 20년간 직장 내 예의(civility)에 대해 연구해 온 크리스틴 포래스 미 조지타운대 경영학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BBQ 지수를 만들었다(그래픽 참조). 나쁜 상사의 악행이 주를 이루지만 동료 간 에티켓에 대한 내용도 있다. 교양 있는 회사문화를 만들어 업무 효율을 높이자는 취지다.


포래스 교수에 따르면 나쁜 상사의 몰상식한 행동은 직원들의 건강과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브랜드 이미지도 떨어트린다. 17개 산업군의 기업 직원 605명을 조사한 결과 나쁜 상사에게서 모욕당한 직원들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심장질환 및 암 발병 확률도 높아졌다. 나쁜 상사의 언동이 부하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고, 이게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나쁜 상사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도 실추시킨다. 미국의 한 실험에서 특정 회사의 상사가 직원을 막 대하는 광경을 본 고객 대부분은 ‘그 기업의 물건은 사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대한항공의 브랜드 이미지가 떨어진 것도 그런 사례다. 최순화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포함한 ‘내부 고객’에게 공감을 얻고 만족시키지 못하면 외부 마케팅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연구가 있다”며 “나쁜 상사 때문에 매출 등 실적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남용·사내정치하는 관리자는 문제그런데도 직장 내 나쁜 상사의 수는 증가추세다. 포래스 교수에 따르면 ‘당신의 직장에 나쁜 상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1998년엔 25%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다 2005년엔 50%, 2011년엔 50% 이상이 ‘그렇다’고 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 탓이라고 한다.


그럼 좋은 상사와 나쁜 상사는 어떻게 구분하나.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 아다치 유야(安達裕哉)는 6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좋은 상사는 부하가 잘한 것을 얘기하지만 나쁜 상사는 잘못한 것을 말한다. 둘째, 좋은 상사는 명랑하지만 나쁜 상사는 항상 뭔가에 기분이 나빠 있고, 기분에 따라 부하를 평가한다. 셋째, 좋은 상사는 회사의 매력을 말하지만 나쁜 상사는 회사의 문제점을 열거한다. 넷째, 좋은 상사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나쁜 상사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다섯째, 좋은 상사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중시하지만 나쁜 상사는 부하가 자기 생각에 맞추기를 강요한다. 여섯째, 좋은 상사는 항상 공부하지만 나쁜 상사는 자신의 과거 경험담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아다치는 “나쁜 상사는 자기 기분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관심사는 나쁜 상사와 출세의 상관관계다. 중앙SUNDAY와 잡코리아 공동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가운데 4명(38.7%)은 부하를 거칠게 대하는 나쁜 상사가 회사에서 잘나간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 이유로 ‘윗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70.6%)을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실적이 나오기 때문’(21.5%)이라고 응답했다.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선 ‘나쁜 상사가 출세하는 것은 예외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포래스 교수는 “내 연구에 따르면 나쁜 상사가 출세하는 건 예외적 현상”이라며 “훌륭한 조직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건 매콜 남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나쁜 상사가 고위 임원에 올랐다 하더라도 업무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 1위가 그의 몰상식한 업무 스타일”이라고 했다. 부하들에게 굴종을 요구하면 힘을 얻을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업무를 수행할 땐 직원들이 협조하지 않아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직원을 교양 있게 대하는 상사가 나쁜 상사보다 직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도 있다. 프랑스 그레노블 경영대 연구팀이 한 생명공학 기업을 분석한 결과 직원들은 교양 있는 상사를 리더로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교양 있는 상사의 업무 성공률도 나쁜 상사에 비해 높았다. 직원들은 ‘왜 교양 있는 상사가 나쁜 상사보다 더 리더처럼 보이냐’는 질문에 “따뜻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폭압적인 사람보다 더 강해 보인다”고 답했다.


『워커 코드』의 저자인 탁진국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는 바람직한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직장생활에서는 명령을 받기보다는 주도적으로 일하는 ‘자율성에 대한 욕구’, 무시당하지 않고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유능감에 대한 욕구’가 중요하다. 상사가 부하를 대할 때 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그냥 되지는 않는다.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부하가 상사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유능감에 대한 상사의 욕구를 맞춰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그걸 아부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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