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생각은…

군 의문사 특별법 제정 왜 늦추나

중앙일보

입력 2005.03.17 18:54

업데이트 2006.04.14 00:34

지면보기

종합 33면

연초에 육군훈련소의 인분(人糞) 사건이 발생하자 군 인권에 대한 개선 논의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사건 후 국방부는 신속하게 관계자를 징계함과 동시에 군 인권 개선을 위해 감찰관(중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권개선위원회를 설치하고, 예하 부대엔 인권 전문상담실을 두도록 했다. 국방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병 기본권 규정'도 제정하겠다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보고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머지않아 민주적이고 인격적인 군대생활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바로 그 무렵, 전방의 모 부대 보일러실에서 자대 배치를 받은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한 신병이 "목매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선임병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못 이겨 스스로 삶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군 수사기관의 수사 결론이다. 유족은 그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들의 주검을 마주하고서 유족이 제기한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이 수사과정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여서 현역 입영대상이 아니었음에도 자원입대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불과 전입 2주 만에 삶을 포기할 수 있다고 믿기는 매우 어렵다. 이는 평소 삶에 대한 그의 긍정적 태도와 100일 휴가 때 만나자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와도 정반대 상황이다. 그가 남겼다는 유서도 많은 의문을 말해준다. 필적도 그렇지만 내용과 어투가 도저히 본인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소하기 때문이다. 사고현장인 보일러실은 그를 구타했던 선임병의 근무지이며, 주검을 처음 발견한 사람 역시 선임병이다.

그러나 군 수사기관은 사고 직전 선임병의 구타 사실은 인정하였지만, 자살로 매듭지었다. 부검과 필적감정도 하였으나 유족의 민간 부검의 참여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국방과학연구소에 의뢰한 필적감정은 본인의 필체로 결론 났다. 아무리 군의 특수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일처리를 선뜻 받아들일 유족, 아니 국민이 있을까. 수사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당한 유족은 국가를 믿고 자녀를 군에 맡긴 국민이기도 하지만 사건의 피해 당사자가 아닌가. 횡액으로 인한 그 쓰라린 가슴에 위로는커녕 배신의 아픔까지 안겨준 격이다.

더구나 군대 내 사망사건 수사, 특히 군 의문사 진상규명과 관련해 군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정도의 큰 불신을 받고 있지 않은가. 논리적으로도 군 의문사 사건을 군 스스로 조사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의 복화술에 가깝다. 군 의문사를 규명하고자 발족한 국방부 내의 '민원제기 사망사고 특별조사단'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군 의문사 진상규명과 유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공정한 제3의 기관이 필요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진단은 바로 이 점을 적절히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정치권에서 제출한 '군 의문사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안'에는 여야 모두 군 의문사 조사의 주체로 군이 아닌 대통령 소속하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두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군 의문사 관련 정책권고'(2004. 4.26)에서 군의 폐쇄적 수사관행에 대해 "수사의 공정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헌법과 국제규약에 보장된 군인의 생명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고,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유족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헌법 제12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적법절차 원칙에 배치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군은 여전히 일방적인 수사를 고집하였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군 의문사 규명에 대해서는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군 내부적 자성과 개혁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비록 한시적일지라도 이 부분에 대한 군의 신뢰를 회복할 때까지는 특별법의 제정과 군사법원법 등의 개정을 통한 수사의 균형과 객관성 보장이 필수적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금 군의문사특별법의 제정 분위기는 매우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군 의문사 재발방지 대책이 3~4년 연속하여 국정감사의 지적사항이었던 데다 여야에 의해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이 문제에 관한 한 정치권의 인식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범답안 수준의 법률안을 가지고서도 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지체한다면 입법부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넘어,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는 군대 내 사망 사건에 대한 방조의 책임은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특별법 제정은 유족의 눈물을 닦아줄 뿐만 아니라 같은 사례가 재발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안이기 때문이다.

윤용규 강원대 교수. 형법학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