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성기의 反 금병매] (76)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5면

"영아야, 아버지 시신을 아래층으로 옮겨 깨끗이 씻겨드려야 하니 앞집 할머니 좀 불러오너라. 아무래도 늙으신 분이 이 일에는 익숙하실 테니까."

금련이 울음을 진정하며 영아를 다독여 심부름을 시켰다. 영아가 훌쩍이며 찻집으로 건너가 왕노파를 불러왔다.

"아이구, 이 일을 어째. 착하디 착한 무대랑이 죽다니."

왕노파가 짐짓 안타까워하며 금련과 영아와 함께 무대의 시신을 아래층으로 옮기고 물로 씻겼다. 왕노파와 금련은 서로 눈짓으로 마음의 말을 나누며 시신을 정리하였다.

'할머니, 어때요? 일이 성공한 것 같아요?'

금련의 눈빛이 이렇게 묻자 왕노파의 눈빛이 대답했다.

'일단 성공한 것 같애. 시신만 잘 정리하고 장례만 잘 치른다면 감쪽같이 넘어갈 수 있을 거야. 정말 수고했어.'

왕노파는 시신을 많이 처리해보았는지 능숙한 솜씨로 무대의 머리를 곱게 빗기고 두건을 씌운 후에 수의를 입히고 신발도 신겼다. 그리고 흰 비단 한 조각을 무대의 얼굴 위에 얹고 깨끗한 이불로 시신을 감싸듯이 덮어주었다. 이제 빈소가 어느 정도 차려진 셈이었다.

왕노파가 일을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가자 금련이 상복을 입고 슬피 통곡하였다. 이번에는 거짓으로 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눈물을 흘리며 곡을 하였다. 하지만 그 눈물은 그동안 남편을 독살하기 위하여 긴장하며 마음고생을 하다가 이제 그 고생으로부터 놓여난 해방감에서 터져나오는 눈물이기도 하였다. 또한 남편을 죽인 죄책감이 어느 정도는 그 눈물 속에 녹아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었다.

흔히 빈소에서의 울음을 세 종류로 나누는데, 정말 눈물을 흘리며 소리내어 우는 것을 곡(哭)이라고 하고, 눈물은 있으나 소리는 없는 것을 읍(泣)이라 하고, 눈물은 없고 소리만 있는 것을 호(號)라 하였다.

금련은 처음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으로 정말 눈물을 흘리며 소리내어 우는 곡을 하다가 차츰 눈물만 흘리는 읍으로, 소리만 내는 호로 바뀌어갔다. 호로 바뀌어 형식적으로 '어이고 어이고' 하고 있을 무렵에는 서문경에게 자기가 직접 이 소식을 빨리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하긴 왕노파가 이미 서문경에게 무대 독살이 일단 성공하였음을 알렸을 것이었다. 지금쯤 왕노파가 서문경에게서 관을 살 돈과 기타 장례 비용을 받아냈는지도 몰랐다.

무대 사망 부고를 듣고 이웃 사람들과 시장 상인들이 조문하러 왔다. 사람들은 문상을 하면서도 자꾸만 금련의 얼굴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무대 마누라가 천하일색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렇게 미인인가 하고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고, 무대의 죽음이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금련을 다시 한번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일 행상 운가도 문상을 하러 와서 무대 영정 앞에서 절을 하고는 금련을 흘끗 쳐다보면서 비씩 냉소를 흘렸다. 금련은 운가의 냉소를 받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럴수록 금련은 서문경이 보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상복을 입고 서문경에게로 달려갈 수도 없었다.

금련이 한나절 동안 문상객을 받느라 지쳐 있을 저녁 무렵, 서문경이 반갑게도 무대 빈소에 나타났다. 혼자 오기 서먹했는지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문상을 왔다. 서문경이 금련에게 정중하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무대랑은 저희 가게에도 호떡을 팔러 자주 왔습니다. 우리 가게 직원들이 무대랑의 단골이었답니다. 나도 무대랑이 만든 호떡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서문경의 입은 그런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그 눈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수고했소. 하루 빨리 당신을 다시 안고 싶소. 상복 입은 당신이 정말 아름답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