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난사범, 기독교인들 사살하며 "곧 하나님 만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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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엽 기자

장총을 들고 있는 크리스 하퍼 머서. [사진=마이스페이스 캡처]

1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의 대학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10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AP통신·CNN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오리건주 로즈버그의 엄프콰 커뮤니티칼리지의 강의실 등에 크리스 하퍼 머서(26)가 난입해 수업 중인 강사와 학생 9명을 사살했다. 그는 범행 당시 방탄복을 입고 있었으며 콜트사의 AR계열 소총 1정과 권총 3정 등 최소 4정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부상자 중 3명은 생명이 위중한 상태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범인은 글쓰기 강의가 열리는 강의실 창을 쏜 뒤 난입했다. 그는 교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이 순간을 수년간 기다려 왔다”고 말하며 즉결 처형하듯 사살했다고 CNN이 목격자를 인용해 전했다. 총격에 놀란 학생들이 바닥에 엎드려 있자 범인은 이들을 일어나게 한 뒤 한 명 한 명에게 “너는 기독교인이냐”고 물었다. 범인은 “기독교 신자”라고 답한 학생들에게 “좋아. 너희는 기독교인이니 하나님과 곧 만날 것”이라며 쐈다고 한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고 답한 학생들은 다리 등 다른 부위를 쐈다. 범인은 이후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총격을 가했다. 총소리에 놀라 강의실 문을 닫으려는 여성에게 수 차례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30~40발 가량 총을 쏜 그는 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던 중 숨졌다.

미 언론들은 총격 사건이 종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범인은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 ‘조직화된 종교를 싫어한다’고 응답했다. 소셜미디어인 마이스페이스에는 총기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한 온라인 사이트에는 지난 8월 발생한 버지니아주 '생방송 기자 총격 사건'을 언급하며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록 더 크게 주목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적었다. 32명이 사망한 버지니아 공대 난사 사건(2007년)과 샌디훅 초등학교 난사 사건(2012년)과 관련된 글도 올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으로 이주한 머서가 무장단체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총을 든 사진을 자주 인터넷에 올렸으며 나치 친위대(SS) 모자를 온라인 주문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머서는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함께 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일상이 돼버린 총기 사건 해결을 위해 이제 정말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남을 해치고자 하는 정신 질환자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이들이 몇 달에 한 번씩 총기 난사를 하는 나라는 선진국 중 미국이 유일하다”며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지난 10년간 테러로 사망한 미국인의 수와 총기 난사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의 수를 비교해 보도해 달라”며 “테러를 막기 위해 수조 달러를 들이고 수많은 법을 통과시켰는데 지금 의회는 총기 사건으로 인한 인명 피해 자료를 모으는 것조차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테러대응연구소(START)의 글로벌테러리즘데이터베이스(GTD)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미국 내 총기 사망자는 9940명(자살 제외)에 달해 최근 45년 동안 미국 내 테러 사망자(3521명)의 3배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가 일상사다. 미 웹사이트 ‘총기난사 추적(MST)’에 따르면 올 들어 4명 이상 죽거나 다친 총기 난사 사건은 294건 발생해 378명이 숨졌다. 하루 평균 1건 이상 발생해 1.4명이 사망한 꼴이다. 헌법으로 총기 보유를 인정하는 미국에서는 지난해 기준 성인의 31%가 총기를 갖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날 머서의 부친 등을 소환해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