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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헬조선과 지옥불반도를 어쩔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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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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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논설주간

사이버 공간에 ‘헬조선’(Hell·지옥+조선)과 ‘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라는 자극적인 신조어가 떠돌아다닌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젊은이는 10대에 입시, 20대에 취업, 30대에는 주거·결혼 전쟁을 겪는다. 발버둥 쳐도 ‘루저’ 신세와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날 수 없다. ‘헬조선’ 신드롬은 경제적 약자의 아픔을 그저 “‘노오력’이 부족해”라고 외면하는 불통의 현실에 대한 야유이자 집단 반란이다.

 성장의 속도가 느려지고 부(富)의 순환에 장애가 발생했다. 전 지구적 현상이다. 부자의 지갑에 들어간 돈은 좀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흘러가지 않는다. 정작 돈을 써야 할 다수는 빈털터리가 되고, 기업은 물건이 안 팔려 만성적 불황이라고 아우성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 나 약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수출 대기업의 직원이나 공무원, 부모를 잘 만난 소수를 제외하고는 늘 불안하다. 빚을 내서 빵가게와 치킨집 사장이 됐지만 절반은 3년을 못 버틴다. 뼈 빠지게 일해도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사람이 태반이다. 자영업자는 평균 1억2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이들이 무너지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금융기관이 휘청거릴 판이다. 젊은 세대의 좌절이 출발선의 고통이라면 자영업자의 몰락은 종착역의 비명이다.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적고 있다. 무분별한 사적 이익의 추구가 아닌 공적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공화주의(共和主義) 정신이다. 헌법이 명령한 공화의 가치를 국가가 걷어차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 이유가 없다. ‘헬조선’은 지금 공화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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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만다행인 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우등생들이 깨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를 기치로 내걸었다. 함께 잘살자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힐러리 캠프에 참여한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의 작품이다. 그는 “성장의 과실을 공유한 사회가 성공했다는 것은 역사적 교훈”이라며 “중산층이 무너지면 기업도 이익 창출 기회가 줄어들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힐러리는 내친김에 얼마 전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한 이익공유제 확대를 공약했다.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배분하는 제도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 조사에 따르면 1948~73년 생산성과 시간당 임금상승률은 각각 97%와 91%로 비슷했다. 하지만 1973~2011년에는 생산성은 94% 증가했는데 시간당 임금은 9%만 올랐다. 중산층의 임금이 38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익공유제는 이걸 바로잡겠다는 제도다. 노동자들의 성과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제도여서 생산성 향상을 유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4년 전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제안했다.

 세계의 유력 기업인들도 뜻을 함께했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는 ‘포용적 자본주의 회의’라는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37개국 저명인사와 기업인 등 250명이 참여했다. 폴 폴만 유니레버 최고경영자는 “자본주의의 본질이 위협받고 있다. 세상의 광기를 막고, 자기 이익보다는 대의를 우선해야 한다”며 “기업, 정부와 금융이 새로운 윤리적 성장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관리하는 자산은 전 세계 투자 가능 자산의 3분의 1인 30조 달러 규모였다.

 미국의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포함한 많은 부자들은 “내게서 세금을 더 거둬 달라(Tax me more)”고 요청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불평등과 빈곤이 악화되고 있으며 포용적 성장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탐욕을 절제하고 함께 살자는 시민적 합의가 지구촌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흘 전 유엔 연설에서 ‘포용적 제도’에 대해 언급했다. 새마을운동을 예로 들면서 “도시와 농촌의 상호보완적인 발전을 이끌면서, 급속한 산업화가 가져다준 폐해를 완충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50년대 이래 교육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면서 “양질의 교육이 좋은 일자리와 포용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정리했다. 맞는 말이다. 최빈국 처지임에도 초등교육을 의무화해 문맹률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춘 이승만,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 살리기에 나선 박정희의 결단은 함께 잘사는 사회를 지향한 것이었다.

 이젠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지에 대해서 듣고 싶다.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헬조선’과 ‘노오력’에 지친 약자를 보듬고 공화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도대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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