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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스푼 5] 전 1위는 맷돌에 녹두 갈아 즉석에서 부쳐 먹는 곳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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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순희네빈대떡’ 추정임(왼쪽) 사장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손님들을 위해 쉴 새 없이 빈대떡을 부친다. 명절이면 시장 끝까지 길게 줄이 늘어선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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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레드스푼 5’를 선정합니다. 레드스푼은 江南通新이 뽑은 맛집을 뜻하는 새 이름입니다. 전문가 추천을 받아 해당 품목의 맛집 10곳을 선정한 후 독자 투표와 전문가 투표 점수를 합산해 1~5위를 매겼습니다. 이번 회는 전입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에 빠지면 서운한 요리가 전입니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팬에 노릇하게 지져낸 전이 소쿠리에 가지런히 놓이면 비로소 명절이 온 게 실감 나죠. 명절 준비가 간소해지면서 전을 사 먹는 집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혹시 맛있는 전집이 궁금하시면 이번 회에 소개하는 전집들을 챙겨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부쳐주시던 전 맛을 느낄 수 있는 푸근한 시장 맛집과 대학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 대학가 전집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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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희네빈대떡 
전국서 이거 맛보려 광장시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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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빈대떡 구울 땐 한눈팔면 안 돼요.”

추정임(55) 순희네빈대떡 대표는 기자의 말을 막았다. 지난 17일 오후 그는 커다란 팬 위에 있는 빈대떡을 차례대로 뒤집느라 분주했다. 빈대떡을 뒤집을 때마다 노릇하게 구워진 빈대떡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의 빈대떡은 센 불에서 기름을 넉넉하게 부은 팬에 튀기듯 굽는다. 그래서 잠시 한눈을 팔면 겉만 타고 속은 잘 익지 않기 때문에 빈대떡을 구울 땐 반드시 집중해야 한다. 추 대표는 빈대떡을 뒤집는 틈틈이 뒤편에 있는 맷돌의 녹두 상태를 살폈다. 밖으로 삐져나오는 녹두를 맷돌 안으로 밀어 넣었다.

 순희네빈대떡은 추 대표의 언니인 추정애(63)씨가 1992년 광장시장 작은 매대에서 빈대떡을 팔며 시작됐다. 광장시장에서 나물을 팔던 친척 언니가 매대 자리가 났다며 소개해줬다. 장아찌를 비롯해 이것저것 팔아봤지만 늘 파리만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추정애씨의 눈에 옆집에서 가져온 빈대떡을 맛있게 먹는 딸이 보였다. “우리 가족 고향인 전라도에서는 녹두를 잘 안 먹어요. 그래서 생소했는데 조카가 워낙 맛있게 먹더래요. 게다가 다들 어려운 시절을 살았으니 싼값에 푸짐하게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거다 싶었다더라고요.” 가게 이름은 어르신들에게 친숙한 순희로 지었다.

 어릴 때부터 손맛 좋기로 유명했던 추정애씨지만 빈대떡은 쉽지 않았다. 맷돌 다루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녹두 갈리는 굵기를 조절하는 게 어려웠다. 맷돌 5개를 버리고 나서야 원했던 굵기대로 녹두를 갈 수 있었다. 커다란 빈대떡을 뒤집는 것도 어려웠다. 빈대떡 크기가 지금보다 더 컸기 때문에 한 번에 제대로 뒤집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손으로 윗면을 잡아 뒤집는 추정애씨를 본 단골이 “뒤집개 두 개로 해보라”고 조언했다. 그의 조언대로 하니 제대로 모양을 유지하면서 빠르게 뒤집을 수 있었다. 장사가 안정 궤도에 오르나 싶더니 이번엔 매대 주인이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다. 7년 만에 지금 가게가 있는 곳으로 옮겨왔다. 추 대표도 이때부터 가게 일에 뛰어들었다. 요즘은 언니 추씨는 장을 봐오고 동생인 추 대표가 빈대떡을 굽는다. 가게를 옮기자마자 방송에 맛집으로 소개됐고 빈대떡 맛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시장 입구까지 길게 늘어섰다. 좋은 재료를 쓰고 그날 만든 반죽은 그날만 사용한다.

 이곳 빈대떡의 가격은 한 장에 4000원이다. 14년 전 가격 그대로다. 14년 전 한 통에 7000원이었던 기름값이 4만원으로 올랐지만 빈대떡 가격만은 그대로다. 재료 값에 인건비를 생각하면 값을 올리는 게 당연하지만 추정애씨는 14년 전 가격을 고집한다. “우리 빈대떡 맛보겠다고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나가다 들리는 게 아니라 이거 하나 맛보려고 오는 거죠. 언니는 그 사람들에게 고마워서라도 가격을 올릴 수 없다고 해요.”

 가게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몇 년 전에는 제주도에서 “빈대떡 먹으러 왔다”며 한 가족이 찾아와 빈대떡을 먹고 반죽을 사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강남에서 퀵으로 배달시켜 먹는 사람도 생겼다. 그러나 시장 특유의 분위기에 즉석에서 맷돌에 녹두를 갈아 반죽을 만들어 팬에서 구워 먹는 그 맛은 어디서도 따라 할 수 없다. 그래서 광장시장 가게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추석 같은 명절엔 빈대떡 사려는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선다.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똑같이 줄을 서야 빈대떡을 살 수 있다.

○ 대표 메뉴: 녹두빈대떡 4000원, 고기완자 2000원
○ 운영 시간: 오전 8시~자정
○ 전화번호: 02-2268-3344
○ 주소: 종로구 종로32길 5 광장시장 내
○ 주차: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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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할머니빈대떡
평생 전 부친 할머니의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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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님 손맛이 느껴진다. 어느 곳보다 맛이 고소하다.”(독자 배헉희)

 공덕시장 입구 테이블에 쌓인 전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서문정애(80)씨가 78년 공덕시장에 매대 하나를 마련해 빈대떡을 팔기 시작한 후 37년째 시장을 지키고 있다. 평생 전을 부친 서문씨는 여든 살을 앞둔 요즘도 매일 가게를 지킨다. 식혜를 담는 날이면 오전 3시에 가게에 나온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서문씨는 “힘들어도 내가 직접 해야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전은 100g 단위로 판매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인심 좋게 푸짐하게 담아준다. 빈대떡·명태전·버섯전·고추전·파전 등 40여 가지의 전을 팔기 때문에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먹고 싶은 전을 고르면 따뜻하게 데워준다. 추석 같은 명절에는 일주일 전부터 예약을 받는다. 명절마다 가게 앞에 줄이 서므로 예약하는 게 좋다.

○ 대표 메뉴: 모듬전 소 1만원, 대 1만9000원, 100g당 2500원씩
○ 운영 시간: 24시간
○ 전화번호: 02-715-3775
○ 주소: 마포구 만리재로 23 공덕시장 내
○ 주차: 인근 주차장(2시간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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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집
푸짐하고 깔끔한 맛 … 막걸리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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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양의 전은 느끼하지 않고 맛이 깔끔하다. 막걸리 종류도 다양한데 특히 알밤 막걸리를 즐겨 먹는다.”(독자 이승진)

 지난 15일 오후 6시30분에 찾은 가게는 1·2층은 이미 만석이었고 가게 앞에선 직원들이 지하로 손님을 안내하고 있었다. 김현옥 사장이 2002년 문을 열 당시 사람들이 오가기에도 협소할 만큼 작았던 가게는 이렇게 손님이 늘면서 옆 가게뿐 아니라 위아래 층으로 확장하며 지금의 규모가 됐다.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전을 부쳐낸다. 김 사장은 “자식이나 남편에게 바로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은 게 주부 마음이다. 손님에게도 바로 만든 맛있는 전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모듬전엔 동그랑땡·동태전·깻잎전·두부전·새송이전·호박전 등 여섯 가지가 포함돼 있고 반반전은 두 가지 전을 고르면 된다. 명절에는 김 사장이 2박3일간 잠 못 자고 전을 부칠 만큼 주문이 몰리기 때문에 예약하지 않으면 전을 못 살 가능성이 높다.

○ 대표 메뉴: 모듬전 1만8000원, 소고기 안심전 1만6000원, 반반전 1만8000원
○ 운영 시간: 오후 3시30분~오전 2시(일요일은 오후 2시30분~자정)
○ 전화번호: 02-581-1419
○ 주소: 동작구 동작대로 7길 19
○ 주차: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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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파전
경희대 파전골목 40년 터줏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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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던 학생 때 중랑천을 걸어서 이 집에 와서 막걸리에 전을 먹던 기억이 나네요.”(독자 이종창)

 회기역 1번 출구 인근에 자리한 ‘전골목’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80~90년대 경희대·고려대·한양대를 다닌 사람들에게 나그네파전은 유명하다. 72년 고 최영우씨가 경희대 앞에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나그네파전’을 연 데 이어 그의 형제들이 고려대와 한양대 앞에 같은 이름의 가게를 냈기 때문이다. 해물과 채소를 듬뿍 넣어 만든 해물파전은 80년대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로해줬다. 그 시절 추억을 되짚으며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아쉽게도 2년 전 화재 사고로 가게를 리모델링 하면서 그 시절의 정취는 사라졌다. 그러나 최씨의 아내 공경자(80)씨가 부치는 파전 맛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두꺼운 파전은 겉이 바삭하고 속이 부드럽다. 2년 전부터 딸이 공씨를 돕고 있다.

○ 대표 메뉴: 원조해물파전 1만원, 파전 8000원
○ 운영 시간: 오후 3시~자정
○ 전화번호: 02-964-4415
○ 주소: 동대문구 회기로28길 14
○ 주차: 가게 앞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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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감댁
제철 재료로 인공 조미료 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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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다. 일반 전도 맛있지만 계절 재료로 부친 전은 먹고 나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 꼭 시킨다.”(독자 김은희)

서촌 맛집들이 모여 있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 위치한 밥집 겸 술집이다. 음식문화거리에 들어선 식당들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에 나무 간판이 눈에 띄는데 이곳이 전대감댁이다. 입구에서 바로 연결되는 길고 좁은 공간을 지나면 탁 트인 거리가 나타난다. 나무 평상과 테이블이 놓여있어 마치 옛날 주막에 온 것같다. 전직 디자이너인 사장이 한옥을 개조해 만들었다. 인테리어 콘셉트가 감성주막이다.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의 실내 장식이 돋보인다. 제철 계절 메뉴로 만든 전 등 20여 가지 전을 판다. 막걸리와 전도 인기 메뉴지만 식사 메뉴도 많다. 점심 시간엔 찌개·볶음·찜 등 요일별 메뉴 한 가지와 가정식 반찬 여섯 가지가 함께 나온다.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맛이 담백하다.

○ 대표 메뉴: 모듬전 1만6000원, 육전 1만8000원, 동그랑땡 1만5000원, 해물파전 1만원
○ 운영 시간: 오후 11시30분~자정
○ 전화번호: 070-4202-5170
○ 주소: 종로구 자하문로1나길 7-17
○ 주차: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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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간 ‘빈대떡 신사’
막걸리와 함께 다시 떴죠

‘아니 쓰는 데가 없나니 온갖 잔치와 혼인과 상사와 제사와 생일바락이나 큰 연회나 여럿이 술마시는데와 심지어 밥상까지라도 이것이 없고는 할 수 없는 것이라.’ 1924년 발간된 한국 최초의 컬러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전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미경 국제한식조리학교 한식 교수는 “전은 예부터 추석·설 같은 명절뿐 아니라 생일이나 혼례 같은 잔치와 손님 접대에 빠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반찬이나 간식으로 즐겨 먹던 전은 튀김 요리가 드문 전통 한식 중에서 기름을 가장 많이 섭취할 수 있던 음식이다. 옛날 전의 형태는 지금과 조금 달랐다. 지금처럼 밀가루와 계란옷을 입히는 전은 1800년대에 나왔다. 신 교수는 “관련 문헌을 보면 1600년대까지 밀가루만 입혀 지져내던 것을 1800년대 들어오며 부침옷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육류·생선류·패류·채소류 등 많은 재료를 활용하는 만큼 전의 종류도 다양하다. 꽃을 이용한 전도 있다. 봄에는 진달래전, 가을에는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 물에 불린 녹두를 맷돌에 갈아 나물이나 김치, 돼지고기 등을 넣어 기름에 부쳐 만든 빈대떡도 전에 속한다. 어느 자리나 환영받던 전은 시간이 가면서 명절이나 제사 음식으로 자리가 좁아졌다. 하지만 빈대떡만은 달랐다. 해방 이후 돼지고기를 즐겨 먹던 북한 실향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돼지고기를 넣은 빈대떡은 술안주로 인기를 끌었다. 40년대 가수 한복남이 발표한 노래 ‘빈대떡 신사’ 중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가사가 당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후 70~80년대까지 시장과 거리 골목의 빈대떡집에는 빈대떡 한 장과 막걸리로 고된 하루를 달래는 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후 녹두값이 오르고 먹거리가 다양해지면서 빈대떡집도 크게 줄었다.

 사람들이 다시 전과 빈대떡을 찾은 건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부터다. 2010년 이후 막걸리가 인기를 끌자 막걸리 안주로 궁합이 잘 맞는 전을 먹을 수 있는 전집에도 사람이 몰렸다.

 예나 지금이나 전집에 사람이 가장 몰리는 건 명절 때다. 특히 전을 사 먹는 집이 늘면서 명절을 앞두고 인기 있는 전집은 종일 전을 부쳐내도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특히 명절 전날까지 긴 줄이 늘어서기 때문에 미리 예약하는 게 필수다. 가게에서 사온 전을 보관할 때 전이 따뜻하다면 반드시 상온에서 식혀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 따뜻한 채로 넣으면 쉽게 쉬어버린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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