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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가발에서 휴대전화·자동차로 … 1964년 수출액 1억 달러서 5000배 껑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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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1964년 11월 30일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것을 기념해 수출의 날을 지정했으며, 1987년부터 무역의 날로 바꿔 행사를 갖고 있다. 무역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실적에 따라 훈?포장, 표창과 수출탑을 수여한다.]

우리 수출은 1965년 약 1억8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5726억6000만 달러로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467억 달러로 사상 최대 반기 흑자를 기록했다. 주요 수출 품목은 누에고치·어패류·가발·면직물 등 1차산업이나 경공업 제품 위주에서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 등 첨단기술이 들어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바뀌었다. 19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최근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조만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AA 등급을 받는 세계 10여 개국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50년의 변화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65년 이후 우리 경제·산업의 발전상을 주요 이슈 중심으로 정리했다.

한국경제 격동의 50년
1960년대 정부 수출산업 육성
76년 포니 개발, 83년 도쿄선언
호황기 80년대 매년 두 자릿수 성장
97년엔 구제금융 시련 이겨내고
2000년 들어 세계 1등 제품 잇따라
2011년 수출 5000억 달러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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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경제 발전의 기틀 준비=60년대 산업정책은 수출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에 힘입어 수출은 1964년 1억 달러에서 1966년 2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빠르게 성장했다. 고속도로와 철도 개통, 댐과 발전소 건설, 몇몇 중화학공장 완공, 비료공장 준공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65년 수자원 종합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했으며, 춘천댐 수력발전소를 준공했다. 이듬해에는 섬진강 다목적댐을, 69년에는 진주 남강 다목적댐을 준공했다. 69년에는 또 부산화력발전소를 준공하는 등 용수와 전력 확보 면에서 발전을 이뤘다. 65년 정부는 18개선의 철도를 부설하는 철도 건설 7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66년 경북선, 68년 경전선을 개통했다. 68년에는 12월에 경인고속도로를 완공했고, 경부고속도로 서울~오산구간을 개통했다. 경부고속도로는 구간별로 순차적으로 개통, 1970년 7월 완전 개통됐다.

65년 식량증산 5개년계획을 마련했으며, 67년에는 제3·4·5 비료공장을 준공했다. 67년에는 원자력청 발족, 조선공업법 제정, 포항종합제철공업단지 기공 같은 중화학공업 발전의 단초가 되는 일들도 있었다. 68년에는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을 발표했고, 울산에 12개 석유화학공업 계열 공장을 기공했다. 포항종합제철도 발족했다. 69년에는 호남정유공장이 준공됐다.

60년대 후반에는 베트남전 참전, 대일청구권으로 자본이 유입되며 경공업 중심의 노동집약적 구조에서 자본집약적 구조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이륙=70년대는 정부 주도로 중화학공업 육성과 식량 자립을 향해 나아갔다. 중화학공업육성책은 73년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 육성 필요성을 천명하며 시작됐다.

70년 4월 지방장관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근면·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마을가꾸기를 주문하며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72년에는 현대중공업이 출범했다. 이 해부터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보급되기 시작해 식량 부족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73년 조강 연산 103만t 규모의 포항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됐다. 또 이 해에는 1차 오일쇼크가 밀어닥쳐 우리 경제가 휘청였으나 중동 건설 붐으로 75년 20개 건설회사가 중동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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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현대자동차의 첫 수출은 1976년 포니다. 2015년 현대자동차는 국내 공장 판매 목표를 내수 69만대, 수출 117만9000대로 잡았다.]

\75년 현대자동차는 울산에 연산 120만대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이듬해부터 대한민국 최초 독자모델인 포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해 또 공정거래법이 공포돼 물가상승 요인 중 하나였던 독과점상품가격의 규제가 가능해졌다. 77년에는 고리 1호기가 완공돼 원자력발전 시대를 열었다. 76년 제정된 부가가치세가 시행된 것도 77년이다. 이 해 우리 수출은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1980년대, 경제 성장 눈부신 활황기=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과 사회 인프라 확충을 발판으로 80년대는 눈부신 성장을 기록한 시기였다. 제조·생산 부분은 물론 금융·무역 등 분야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갔다. 81년 시장경제 파수꾼 역할을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설치됐다. 82년에는 1차 금융실명제가 단행됐고, 이어 금융자산소득 종합과세가 시작됐다.

82년에는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접속이 시작됐다. 83년 고 이병철 회장은 '삼성이 반도체산업에 진출하겠다'는 도쿄선언을 발표했다. 도쿄선언 10개월 후 삼성은 세계 3번째로 64KD램 생산에 들어갔다.

86년 3저호황으로 경제 활황기를 누렸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로 수출이 크게 늘어났다. 87년에는 민영화추진위원회가 설치돼 국민은행·한전 등 25개 정부투자기관과 5개 정부출자기관을 포함, 30개 기관을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하고 민영화 작업에 착수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을 개최했다.

1990년대, 국민소득 증가 선진국형 산업구조로=92년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한중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는 새 장을 열었다.

93년에는 82년 1차 금융실명제에 이어 본격 금융실명제가 단행됐다. 문민정부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제정경제명령'을 발동했다.

94년에는 75개 공기업의 민영화 계획이 확정됐다. 87년부터 추진된 민영화는 98년까지 이어졌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해 인터넷시대의 막이 오른 것도 이 해의 일이다.

95년에는 수출 1000억 달러를 달성했고,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97년 말에는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00억 달러 구제금융을 받아 국가부도 사태는 면했다. 당시 1달러당 원화환율은 1760원까지 치솟았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98년에는 노동자·사용자·정부 간의 협의체인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했다. 그해 정리해고법안이 통과됐고, 종합주가지수 300선이 붕괴됐다. 부실기업 정리를 위해 55개의 퇴출기업 명단이 발표됐으며, 5개 시중은행 퇴출도 발표됐다.

2000년대,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재도약=2000년대에 들어서며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에 나선다. 먼저 고금리정책과 긴축재정, 수요억제를 통한 경상수지 흑자정책을 추진해 2004년 5월까지 갚도록 예정돼 있던 차입금 전액을 2001년 8월 조기 상환했다. 이후 한국 경제는 IMF 위기를 겪은 지 2년 만에 '고성장-저물가-경상수지흑자'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능력을 발휘했다.

2000년 12월 6.82%였던 은행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2001년 4.58%로 떨어져 '실질금리 제로시대'가 됐다. 은행 경기를 자극하려고 한국은행은 콜금리를 네 차례 낮췄다. 금리가 낮아도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며 돈을 쓰지 않아 금리 하락을 부추겼다. 그 결과 대출금리도 연 6~7%로 낮아졌다. 초저금리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2000년대는 국내 전자 브랜드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시기였다. 세계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시장에서 2001년 한국이 생산·출하한 중대형 TFT-LCD는 1843만2000대로 세계 전체 시장의 40.7%를 차지,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2007년에 휴대전화 부문에서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2위의 휴대폰 제조업체가 됐다. 아이폰이 국내에 2009년 상륙, 스마트폰 열풍을 일으켰다. 2010년 12월 스마트폰 '갤럭시S'는 출시 7개월 만에 세계시장에서 누적판매량 1000만 대를 넘어섰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다. 대한민국은 IMF와 OECD로부터 잘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위기를 극복했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비G7 국가 중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G20 정상회의라는 의의가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경제는 다시 뛰기 위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경제, 내수·수출 균형경제를 이루는 것이 목표다. 올해엔 상반기에 467억 달러로 사상 최대의 반기 흑자를 기록했다.

김승수·송덕순·배은나 객원기자 kim.seungsoo@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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