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희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5호 22면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제기동 길가엔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큼직한 과학교재사가 있었다. 진열된 주황색의 노블러 UC(유선 조종) 비행기는 너무나 멋졌다. 주먹만 한 크기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프로펠러를 돌렸다. 뿜어져 나오는 휘발유 배기가스 냄새마저 황홀했다. 줄에 연결된 비행기를 내 손으로 조종해 날려보길 진심으로 소망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머니 속엔 백 원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 광석 라디오 키트를 사서 애써 위안의 구실로 삼았다.


대치의 위안은 끝까지 지속되는 법이 없다. 사십년이 지난 지금 기억 속의 광석 라디오는 지워져 버렸다. 갖지 못한 주황색 노블러는 여전히 손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했을 터다. 비행에의 꿈을 담은 드론을 이젠 대형 마트에서도 판다. 시연장에서 내 손으로 날렸던 드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어릴 적의 간절한 소망은 애들 틈에 끼어 함께 감탄과 환호를 흘리며 비로소 이뤄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대구의 한 기업가가 드론에 빠져있다는 소식을 최근 들었다. 칠십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호기심을 유지하는 에너지가 놀랍다. 서툰 솜씨로 조정기와 태블릿 모니터를 조작해 드론의 매력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란다.


조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몇 년 사이 빠른 속도로 성능이 개선된 덕분이다. 내 마음대로 휘둘러지는 그 무엇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서슴지 말고 드론을 날려 볼 일이다. 출발이 두려워 머뭇거리면 결과도 없다.


부분 넘어 전체를 조망 … 생각의 변화도 촉발 왜 나는 드론에 관심을 가지는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하늘을 날고 싶은 어릴 적 꿈은 이뤘다.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비행기와 헬리콥터도 타 보았다. 원초적 욕망은 체험과 반복의 익숙함으로 강도가 약해졌다. 대신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선의 변화가 준 신선함이다. 올려다보던 구름을 내려본다. 머리 위의 사물이 발밑에 위치하는 역전의 혼돈이 나쁘지 않았다. 눈과 평행한 것들만 보았던 평소의 그림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달리 보인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시선이 새처럼 바뀐 변화다. 비행기의 고도는 새보다 높으므로 신의 시선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내려 굽어보는 비행기 창문 밖 풍경에 빠져버렸다. 십년 가까이 비행기만 타면 창가 좌석에 앉아 하늘과 구름 사진을 찍었다. 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이코노미 석의 불편함은 시선의 호사 덕분에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창문 너머엔 희박한 대기가 만든 투명함과 물방울,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진 구름의 변화무쌍한 조형으로 가득했다. 때론 더욱 가까이 접근하고 싶었다. 다른 각도도 보고 싶기도 했다.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난 비행기를 탄 승객이고 조정 간을 잡은 기장은 정해진 항로를 가고 있을 뿐이다.


하늘과 구름 사진을 찍으며 시선의 높이가 주는 묘미에 빠졌다. 출발은 단순하나 과정은 복잡하게 분화되게 마련이다. 내 마음대로 움직여 조망의 시선으로 사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절실했다. 장난감 수준의 드론과 카메라의 성능은 기대를 저버렸다. 이후의 섭렵은 괴로운 반복의 연속이다.


2006년 중국의 JDI가 상업용 드론을 만들기 시작했다. 채 용도를 정하지 못한 상업용 드론은 카메라부터 달았다. 드론과 소형 카메라의 성능은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를 거듭했다. 바라던 물건을 만났다. 팬텀과 인스파이어 시리즈다. 이를 통해 찍은 사진으로 누구나 보이지만 본 적 없는 풍경에 매료당했다. 드론이 나오기 전까지 부분에 함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는 답답함을 몰랐다.

드론으로 위에서 내려다본 가리왕산 숲의 정경.

드론계의 애플 … 장쯔이에게 청혼 반지도 배달 이 지점에서 우리의 그림들을 다시 보아야 한다. 겸재 정선 이전의 산수화는 관념화다. 산의 모습은 화가의 증폭된 인상을 옮겼을 뿐이다. 동양의 산수화에서 재현의 충실성은 큰 문제 되지 않을지 모른다. 실재의 세계를 옮겨야 한다는 겸재의 반성은 이유가 있다. 이후의 진경산수는 달라진 변화를 보인다. 본 것에 충실한 묘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헌데 당시의 그림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산수의 대상이 서울 근교와 금강산에 집중되고 시선도 정해져 있다.


명산은 전국 어디에나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지역이 정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실제의 산을 제대로 본적이 없는 것이다. 서울에서 활약하던 이들이 멀리 있는 높은 산에 올랐을 리 없다. 금강산을 제외하면 선비의 등정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화가들이 본 산들은 전체의 조망을 할 수 없는 눈높이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진경산수 역시 산의 단편적 인상을 옮긴 반쪽의 성과로 여겨야 옳다.


우리의 산은 하나만 보이면 홑산, 두 세 개 겹치면 겹산의 풍경이다. 더 많은 연봉이 중첩되면 첩산의 풍경이 된다. 우리 그림에 묘사된 산들은 서 있는 자리에서 바라본 홑산과 겹산 정도의 풍경이 많다. 첩산의 그림들은 빈도가 떨어진다. 양과 함께 묘사도 불불명해진다. 조망의 시선을 갖지 못한 한계다. 보지 못한 것은 상상마저 부실해지게 마련이다. 높이 오르는 새가 더 멀리 볼 수 있음을 있고 살았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첩산의 풍광을 비로소 들여다보았다. 조망의 시선으로 찍힌 사진 이전에 산을 제대로 본 이들은 극소수 였을 것이다. 조망의 시선을 갖게 해준 드론(정확한 명칭은 ‘헬리 캠’이다)은 ‘시선의 혁명’이라 해도 좋다. 위에서 밑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덕분이다. 보지 못했던 현실의 조망으로 사물과 풍경은 새롭게 다가온다. 시선을 달리해 본다는 것, 이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좋은 재료가 된다.


JDI 드론은 누구나 살 수 있는 상업용 드론의 대표주자다. ‘드론계의 애플’이라고 불릴 만큼 간결하고 매력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쓸 만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도 강렬하다. 드론 관련 뉴스에서 JDI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중국의 유명 여배우 ‘장쯔이’에게 구혼한 남자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JDI 드론에 실어 보냈다. 구애의 수단으로까지 진화한 드론의 현재다.


드론은 새로운 용도를 향해 제 발로 나아가는 중이다. 남해에 사는 농부는 이미 드론으로 농약 살포를 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부분까지 군말 없이 다가선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피자나 의약품을 택배 시키는 일은 이미 지난 뉴스가 되었다. 드론은 단순히 하늘을 나는 소형 비행체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물 인터넷의 앞선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왜 드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사진을 찍기 위해 드론이 필요한 사람은 일부다. 미래의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잠재력이 더욱 중요하다. 드론에 결합할 내용이란 무궁무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미래는 가깝게 다가온다. 막연한 공상이 이미 현실로 바뀐 당혹감을 느껴보지 않았는지. 장난감 정도로 우습게 봤던 드론은 예전에 할 수 없던 일을 한다. 하늘을 나는 비즈니스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남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본 적 있는가. 궁금하다면 10만 원짜리 드론부터 날려 볼 일이다. ●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