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 뱃길 막히자 하늘로 直送

중앙일보

입력

최근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장비와 기술의 거래를 육.해.공에서 합법적으로 검색 및 저지하기 위한 방안을 국제사회에 촉구하는 배경에는 북한이 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의 중심국인 북한이 선박 외에 항공기를 이용해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다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런 분석은 다양한 정보수집 채널을 통해 입수된 정보를 근거로 한다는 게 정보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 정보당국은 이란의 IL-76 수송기가 예년과 달리 지난 4월 이후 순안공항에 자주 출현하자 24시간 북한 전역을 들여다보는 인공위성을 통해 순안공항 감시체제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극도의 보안 속에 컨테이너를 IL-76 수송기에 싣는 게 포착됐다.

미 정보당국은 인공위성과 항로관측 장비 등으로 이 수송기를 추적해 중간 기착지 없이 중국과 중앙아시아 상공을 통해 이란으로 직항한 것을 확인했다.

미 정보당국은 이란 IL-76 수송기의 이런 궤적을 수차례 확인하면서, 북한과 이란에 두고 있는 다양한 정보 채널을 가동해 컨테이너에 실린 물건이 미사일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컨테이너 위성 사진 등을 정밀 분석한 결과 컨테이너의 길이가 스커드 미사일을 담기에는 길어 노동 미사일이 들어 있다고 추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런 정보들을 지난 4월 이후 한국 정보당국에 전달하면서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정보 관계자는 "현재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서산호 사건 이후 미사일 수출 방법을 변경해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은 항공기를 이용할 경우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우방들의 검색망을 피해 미사일 외에 무기급 플루토늄이나 농축 우라늄, 생물.화학무기를 수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 주력하고 있는데, 북한이 항공기를 이용해 대량살상무기를 수출할 경우 미국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신호탄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발언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폴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을 제안했다.

서산호 나포 사건 때처럼 국제법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수출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제 규범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은 이후 지난 1~3일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8(서방 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와 지난 1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PSI 회의', 12~13일 호놀룰루에서 열린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등에서 '대량살상무기 거래 봉쇄안' 제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편 정부 당국자는 "PSI를 놓고 북.미관계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ch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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