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 들녘 일손돕기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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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손이 달려 애를 먹는 농촌지역에 농번기 일손돕기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의 도움에 모처럼 농민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16일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부터 지금까지 일손돕기에 참가한 사람은 대학생·군인·공무원 등 모두 2만여명에 이른다.

봉화군 석포면의 홍성수(67)씨는 파릇파릇한 모가 자라는 논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홍씨의 논은 다섯마지기(1천평). 길도 제대로 없는 산자락 논이어서 이앙기도 들어갈 수 없다. 부부가 모내기를 하기엔 벅찬 면적이다. 일손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 걱정이 태산 같았다.

홍씨는 “지난주 면사무소와 농협 직원 10명이 찾아와 모내기를 무사히 마쳤다”며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고 고마워했다.

농촌지역은 양파·마늘 수확에 모내기, 과일 솎기, 고추 모종 지지대 세우기 등이 겹치는 5,6월이 되면 홍역을 앓는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가 노인들만 있는 데다 일손 구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휴일날 도시에 사는 자녀와 친지들까지 불러 모아 보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안이 없는 농민들은 시청·군청·경찰서 등 관공서에 매달리기 일쑤다. 포항시 기계면 주민들은 봄철부터 포항시장에게 일손 지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포항시 등의 지자체는 아예 지난달 중순 ‘농촌 일손돕기 지원창구’를 만들었다.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사람과 일손이 필요한 농가를 연결하는 것이 임무다. 해병대 1사단 장병과 시 공무원, 포항 새살림회 회원, 한동대 학생 등 3천5백여명이 팔을 걷어붙였다. 경주·김천·울진 등 경북지역 8개 경찰서 경찰관들도 들판에서 땀을 흘렸다.

농민 원종필(57·포항시 기계면 고지리)씨는 “10여일간 해병대 장병 4∼5명씩이 찾아와 감·사과의 열매 솎기 작업을 해줬다”며 “이들 덕분에 올해 농사 가운데 가장 힘든 작업을 쉽게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포항시의 일손돕기 담당 이형우(39)씨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것은 기쁘지만 농민들이 갈수록 고령화돼 일손 부족현상도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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