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 '열공'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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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영업부 직원인 A차장에게 주말은 여느 은행원처럼 휴일이 아니다. 소속 은행이 개설한 주말 연수 과정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요일 저녁이면 술자리를 마다하고 일찍 귀가해 주말에 있을 과제와 평가 준비에 몰두한다. 담당 업무인 자산관리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주말을 희생해야 한다는 각오다. A차장은 “새로 부임한 행장이 글로벌 뱅크 도약을 위해 전체 직원이 끊임없이 학습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 오고 있다”며 주말 연수 과정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은행이 ‘열공’ 모드에 빠졌다. 저금리 시대에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뭔가 남달라야 하고, 조직의 경쟁력도 키워야 한다. 고객의 눈높이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은행원이 자기계발에 힘쓰지 않으면 영업 현장에서 애먹을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평생 자산관리 시대엔 은행은 물론 증권· 보험 등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서비스 노하우를 습득하는 게 필수다. 한마디로 은행원을 금융 팔방미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요즘 은행가에 불고 있는 열공 바람의 배경이다.
 올 초 KB국민은행 영업직원들은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스터디그룹을 결성했다. 은행 성장을 이끄는 핵심 경쟁력이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스터디그룹은 철저하게 실용주의, 현장 중심의 철학을 담았다. 자산관리·여신·외환·상품판매 등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직무를 습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업무 달인’으로 지목된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생생한 업무 지식과 현장 경험을 전수하는 도제식이다. 영업의 달인은 직무마스터, 행내 강사, 기업 금융컨설턴트, 마스터 VM 등으로 불리는 학습 리더다.
 
KB국민은행 스터디그룹 94개
회사 측은 스터디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전산 실습 자료, 직무게시판 운영, 학습자 간 SMS무제한 발송 등 편의를 제공하면서 은행장 표창, 해외 연수의 보상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가계·기업 여신, 상담 업무, 외환, RM 마케팅, 퇴직연금 등 총 6개 분야 94개 그룹에 1000여 명 이상의 직원이 참여하고 있다.
 스터디그룹에 참여한 B과장은 “업무 달인으로부터 현장 중심의 경험과 노하우를 학습할 수 있어 당장 내일이라도 고객에게 전문적인 금융 상담을 해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특화 프로그램인 맞춤식 주말연수 과정도 개설해 놓고 있다. 주말 연수 과정은 KB직무인증제 LevelⅡ(자산관리 컨설팅 및 기업금융) 과정, RM 아카데미 전문과 과정, CIB 주니어 양성 과정,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 강화, 금융 상담을 위한 필수 자격증 취득 지원 같은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직원 사이에 호응이 높다.
 KB경영연구소 보고서, 은행 내부 교수와 전문가가 엄선한 필수 학습자료도 상시 제공해 현장에서 수준 높은 고객 상담 서비스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전 직원에게 태블릿 PC를 제공해 상시 학습이 가능한 학습인프라도 갖출 예정이다. 집합·통신·사이버·스터디그룹 등 일상에서 학습 가능한 연수 과정 이수 등을 위해 주말까지 반납하며 자기계발에 열심인 직원은 상반기에만 이미 3000 여 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직원의 열공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은행의 인재개발부장은 “일반적으로 은행에서 시행하는 주말 연수는 1~2일 단기 과정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KB국민은행의 주말 연수는 3~4개월 중장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전문가를 양성하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다”며 “위탁교육이 아닌 맞춤식 자기계발 과정으로 운영돼 직원들의 자율적 참여도가 높다”고 말했다.
 
주말 연수 과정 3000여 명 참여
직원들은 상담 능력 향상과 업무 능력 배양을 위해 연수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끊임없이 학습하는 조직문화로 정착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진실한 국민의 평생 금융파트너가 돼 전문 상담 서비스를 신속하고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은행원’이 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 직원이 학습 조직으로 거듭난 KB국민은행의 ‘리딩뱅크 탈환’이라는 외침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다.

<서명수 재테크 칼럼니스트 seo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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