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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중국 지식인은 왜 권력에 입을 닫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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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반우파투쟁 당시 교통부에서 부원들에게 둘러싸여 비판을 받는 교통부장 장보쥔(章伯鈞). 이 모습은 반우파투쟁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사진 김명호 제공]

나의 중국현대사
장이허 지음, 박주은 옮김
글항아리, 524쪽, 2만5000원

중국 베이징(北京)대학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이가 있다. 루쉰(魯迅) 연구의 1인자로 강의는 언제나 비판 정신으로 가득한 첸리췬(錢理群·76)이 그다. 첸은 대륙 출판계에는 역사적으로 4개의 금지구역(禁區)이 있다고 말한다. 1957년의 반우파(反右派) 투쟁, 59~61년의 대기근, 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그리고 89년의 천안문(天安門) 사태다.

 이 책은 중국 출판계의 첫 번째 금지구역이 된 반우파 투쟁을 다루고 있다. 반우파 투쟁이란 마오쩌둥(毛澤東)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유도한 뒤 그 비판에 뛰어든 이들에게 우파라는 모자를 씌어 탄압한 사건을 말한다. 55만 지식인이 걸려 들었다. 독자는 우파나 투쟁이란 말에서 정치의 딱딱함과 운동의 격렬함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저자의 독특한 시각과 세밀한 필치, 그리고 역사적 사색이 주는 데 따른 편안한 글 읽기다. 때론 소녀의 감성으로 때론 노년의 완숙함으로 반우파 투쟁 때 희생된 인물 8명의 추억을 더듬는 형식에서 ‘아! 역사를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나지막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중국 속담에 ‘나무는 껍질이 벗겨질까 두려워하고 사람은 마음을 다칠까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다. 책이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바로 반우파 투쟁이 어떻게 중국 지식인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는가 하는 점이다. 지식인의 내면은 밝기도 하고 또 어둡기도 하다. 그 복잡한 내면을 정면이 아닌 측면 또는 후방에서 응시하면서 그들이 걸어간 슬픈 영혼의 궤적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루쉰 문학의 비애감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의 두 번째 미덕은 오늘의 중국에 던지는 메시지다. 소재인 반우파 투쟁이 일어난 지도 이미 60년 가까이 된다. 그러나 그 시대가 던진 물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당시 우파 모자를 쓰고 핍박을 받은 대표적 인물인 추안핑(儲安平)은 그의 ‘당천하(黨天下)’ 발언이 문제가 됐다. 역대 중국의 전통 왕조를 황제(皇帝) 일가가 지배하는 가천하(家天下)라고 한다면 현대 중국은 공산당 일당이 다른 모든 목소리를 억압하고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으니 당천하라 부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공산당 독재에 대한 도전으로 비친 것은 물론이다.

 추안핑은 당시 광명일보(光明日報) 편집장이었고 사장은 바로 저자의 아버지 장보쥔(章伯鈞)이었다. 장은 교통부 부장이며 중국민주동맹(民盟)의 부주석이자 농공민주당(農工民主黨)의 주석이기도 했다. 장은 당천하 발언의 배후로 의심 받았다. 그리고 그 역시 중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 민주당파를 포함하는 정치설계원(政治設計院)을 만들자는 말을 했다가 우파 모자를 쓰고 탄압을 받았다.

 공산당에 대한 조언을 하라고 해 놓고선 그것이 본심이냐며 숙청하는 이 방법은 이후 ‘뱀을 유인해 동굴로 나오게 한다(引蛇出洞)’는 지식인 때려잡기의 한 수단으로 간주됐다. 이 사건 이래 중국의 지식인은 입을 닫게 됐다. 지식인이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포기하는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아직도 당천하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군대가 국가의 군대인 국군(國軍)이 아닌 공산당의 군대인 당군(黨軍)이듯 말이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점은 중국 지식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식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시(詩)·서(書)·화(畵)를 기본으로 하되 반드시 깨어 있어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의 교유(交遊)는 친절과 믿음, 편안함이 어우러지는 영혼의 만남이다. 이들의 대화에는 흰 구름이나 가랑비, 봄날의 미풍을 닮은 은근하고도 부드러운 묘미가 배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식인인 저자 또한 우파의 딱지가 붙어 20년 형을 선고 받고 옥중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옥중에서 남편과 사별하는 비운을 겪지만 사회를 향한 그의 목소리는 전혀 여리지 않다. “일면은 봉건사회의 전제주의로, 다른 일면은 소련에서 들여온 비밀경찰로 이루어진 제도. 진시황(秦始皇)과 KGB, 바로 이게 중국의 정치기구인 셈이지”라는 아버지의 말을 가감 없이 책에서 풀어놓고 있다. 2004년 대륙에서 『지난 날은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는다(往事幷不如煙)』는 제목으로 출간했으나 곧 판매금지 처분을 받게 된 이유다. 이후 대륙에서 삭제된 부분을 보완해 홍콩에서 『마지막 귀족(最後的貴族)』으로 출판됐으며 이 책은 홍콩판을 완역한 것이다.

유상철 중국 전문기자 you.sangchul@joongang.co.kr

[S BOX] 대약진시대의 중국 그림 “크게, 크게 그려라”

저자 장이허(73)는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 추억엔 그 시대의 초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당대 최고의 미남=저자의 아버지 장보쥔은 공산당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등 미남 셋, 국민당엔 왕징웨이(王精衛) 필두로 미남 셋, 민주당파엔 추안핑 등 미남 셋이 있지만 이 아홉 중 최고 미남으로 왕징웨이를 꼽았다. 왕징웨이는 눈이 잘 생겼는데 그 눈에 특히 의기(義氣)가 있는 게 매력으로 꼽혔다.

 ●육단간부와 당두간부=1950년대 중국 관리 중 고기와 달걀을 배급 받는 사람은 육단간부(肉蛋干部)로 불렸고, 설탕과 콩을 배급 받는 사람은 당두간부(糖豆干部)로 불렸다. 그 대우에 차이가 컸던 것이다.

 ●화가의 대약진 운동=화가가 대약진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은 그림을 크게 그리는 것이었다.

 ●중국 대기근=1959년부터의 3년 대기근 시절엔 국가 원수가 직접 나서 “바쁠 때는 말린 것을, 한가할 때는 죽을 먹자”고 호소했 다.

 ●수감 생활 세 추억=수감자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고 수감 기간이 그렇게 길 줄 몰랐으며 감옥 여건이 그렇게 열악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는 게 저자의 고백이다.

 ●개혁개방 분위기=‘10억 인민 가운데 9억이 상인이라면 먼저 1억이 가게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며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먼저 부자가 되자(先富論)’는 구호가 사회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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