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매도 보고서 제로' 관행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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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한국소비자원은 내츄럴엔도텍 백수오 원료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후 주당 8만원대이던 이 회사 주가는 한 달 사이 17번 하한가를 기록하며 8000원 대로 곤두박질했다. 그러나 주가가 10분의 1 토막 나는 동안 이 종목에 대한 매도 보고서는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올 들어 4월까지 6개 증권사가 총 13건의 매수 보고서를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두 달 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6월 25일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해앙플랜트 쪽에서 손실이 파악됐다. 2분기 실적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달 23일 유진투자증권이 매도 보고서를 낼 때까지 대우조선해양을 팔라는 보고서는 한 건도 없었다. 이 기간 대우해양조선 관련 보고서는 총 12건이 나왔지만 어느 증권사도 팔라고는 권하지 않은 셈이다.

증권사의 ‘매도 보고서 제로(zero)’ 관행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11일 새누리당 김상민(비례) 의원이 2011년 이후 올 7월까지 국내 및 외국계 증권사 각 10곳의 매도 보고서 비율을 조사한 결과, 각각 0.05%와 9.81%로 나타났다. 외국계 증권사가 1만 건 당 981건의 매도 보고서를 내놓은 동안 국내 증권사는 고작 5건을 썼다는 뜻이다.

매도 보고서가 없다 보니 증권가에선 “중립이라 쓰고 매도라 읽는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하지만 중립 의견도 많지 않았다. 국내 증권사의 중립 보고서는 9.68%로, 외국계 증권사 평균(28.12%)에 훨씬 못 미쳤다. 사실상 매수 권고 일색이란 얘기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 매수 보고서 비율은 90.27%로, 외국계 증권사 평균(62.07%)를 크게 웃돌았다.

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3년 취임 이후 매도 보고서 의무화를 추진한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올 3월 주주총회에서 “매도 보고서를 글로벌 증권사 수준(16%)까지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서도 지난 5월부터 모든 증권사의 기업 분석 보고서 투자 등급 비율을 공시하고 있다.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매도 보고서 확대를 위해 금투협과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의 정기협의체를 신설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김 의원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국내 증권사 10곳의 매도 보고서 비율은 0.14%에 불과했다. 김 의원은 “주가 하락이 불 보듯 뻔해도 사라고 권하는 꼴”이라며 “금융위원회가 금융투자업 업무규정을 개정해 매도 보고서 비율을 정하고 현행 1년인 금투협의 보고서 투자 등급 비율 공시 기간도 5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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