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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인으로 크렴” 아이와 생이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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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태어난 지 넉 달 된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사내 아이. 이름은 ‘한국’이다. 한국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캄보디아 불법 체류자인 엄마·아빠가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부모는 아들이 한국에서 클 수 있는 방법은 입양시키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프리랜서 공정식]

캄보디아 출신 리홍(30), 나리(28·여) 부부는 넉 달 전 ‘한국’이를 낳았다. 불법 체류자여서 자국 대사관에 출생 신고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기는 국적이 없다.

 아이가 100일 될 무렵 엄마는 어려울 때마다 자신들을 도와주던 김성진(49) 포항이주노동자센터장을 찾아갔다. 그러곤 간청했다. “아이가 여기서 숨어 지내지 않고 제대로 교육받고 크려면 아무래도 한국 국적이 필요합니다. 당신들처럼 좋은 분들이 입양해 주세요. 멀지 않은 곳에 사니 수시로 아이 얼굴을 볼 수 있겠죠.”

 김 센터장은 “부모가 있는데 입양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나는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고사했다. 그러자 엄마가 다시 부탁했다. “센터장님처럼 좋은 분 어디 없을까요. 입양을 부탁할게요. 다만 너무 먼 곳에 사는 분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를 볼 수 있었으면….” 입양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2009년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앞. 돌이 채 안 된 여자 아기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고, 안에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올게요. 꼭 돌아올게요’라는 내용이었다. 편지에는 부모의 이름도, 연락처도 없었다. 어린이집이어서 아기를 키울 수 없었던 원장(55·여)은 아이에게 ‘유정’이란 이름을 붙여 보육원에 보냈다.

 2년 뒤 한 베트남 여성(당시 26)이 찾아왔다. 딸에게 줄 분홍 드레스와 인형을 들고서였다. 보육원을 알아내 찾아간 엄마는 낯설어하는 딸을 끌어안고 흐느끼며 한국말로 딱 한마디를 반복했다. “미안하다.”

 지금도 엄마는 수시로 유정이를 만난다. 하지만 데려가지는 않겠다고 한다. 친엄마인 게 판명되면 딸이 한국 국적을 잃을 수 있어서다. 자신도 베트남으로 강제출국 당한다. 엄마는 그렇게 딸이 한국인으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불법 체류자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떻게든 한국 국적을 갖기 원한다. 고국을 등지고 불법 체류자로서의 불안과 불이익을 감수할 만큼 한국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양을 시도하거나 아기를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는 길이어서다. 그러곤 먼발치에서 지켜본다. ‘이별 아닌 이별’이다.

 이주노동희망센터의 안은주 국제협력팀장은 “선진국에 불법 체류 한국인이 많던 시절, 우리 정부는 그 나라에 우리 국민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하곤 했다”며 “이젠 우리가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나라가 됐으니 인도적 차원에서 생이별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종권(팀장)·임명수·조혜경·김호·유명한 기자, 이성은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VJ=김세희·김상호·이정석, 영상편집=정혁준·김현서, 디지털 디자인=임해든·김민희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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