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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불법체류 아빠 우즈베크 응원 때 6세 아들은 손흥민 첫 골에 환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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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혼기르(6·왼쪽 둘째)와 잠시드(5·셋째) 형제는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은 그저 부모의 나라일 뿐이다. 올 초 한국과 우즈베크가 아시안컵 8강전에서 만났을 때 자혼기르는 한국을, 아빠는 우즈베크를 응원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자혼기르는 한국 국가대표가 되는 꿈도 꾼다.

불법체류자의 자녀로 태어나 국적을 갖지 못한 아이들. 그들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올 1월 아시안컵 대회 8강전에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8강전에서 맞붙었을 때다. 0-0이 이어지다 연장 전반 손흥민 선수가 첫 골을 터뜨렸을 때 TV를 보던 자혼기르(6)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함께 TV를 보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불법체류자인 아빠(35)는 그런 자혼기르를 흘긋 쳐다봤다고 한다. 자혼기르는 “한국 사람이 한국팀 이기니까 좋아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중앙대 김성천 교수는 이주근로자 보호단체 상담사에게 들은 얘기를 전했다. “정말 한국 아이랑 똑같이 생긴 몽골 아이가 적발돼 강제출국 당하게 됐다. 상담사가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더라.”

 경기도에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허버트(10)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불법체류자 부모를 뒀다. 입버릇은 “대박~” “헐~”이다. “잔치국수를 제일 좋아한다”며 “잔치국수는 깍두기하고 먹어야 제격”이라고도 했다. 아프리카 혈통을 이어받아서인지 탄력이 좋아 4학년 높이뛰기 선수로 훈련도 받는다.

 지난해에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 남자가 태권도를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엄마를 졸랐다고 한다. 열심히 도장에 나가 어느덧 빨간 띠를 맸다. 지난 여름방학 때 같이 배우기 시작한 친구들이 모두 검은 띠 심사를 봤다. 하지만 허버트는 제외됐다. 태권도장에서 심사를 하는 빨간 띠까지는 가능했지만 국적이 없는 그는 국기원에서 하는 검은 띠 심사에는 신청 자체를 할 수 없었다. 허버트는 일주일 내내 “나도 검은 띠 매고 싶다”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허버트는 말했다. “난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 음식 먹으며 자랐고 한국말을 해요. 콩고말은 전혀 몰라요. 그런데 왜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요.”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자라던 무국적 아동들은 사춘기 때쯤 허버트 같은 일을 겪으면서 혼란스러워한다. ‘이주와 인권 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은 “불법체류자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죄 때문에 제도적으로 앞길이 막혀 착한 아이들이 방황하게 되는 현실은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종권(팀장)·임명수·조혜경·김호·유명한 기자, 이성은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신인섭·오종택 기자, 프리랜서 오종찬·김성태, VJ=김세희·김상호·이정석, 영상편집=정혁준·김현서, 디지털 디자인=임해든·김민희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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