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소기업은 고용환경 악화 … 인건비 더 들고 구인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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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동의 공구업체 A사는 5년째 직원 수 20명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직원을 줄여서가 아니다. 사업 확장을 위해 몇 차례 채용 공고를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30대 젊은 구직자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왔다가도 업무 설명을 들은 뒤 “일이 너무 힘들 것 같다”며 돌아갔다. 회사 관계자는 “대부분이 40~50대인 기존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주며 야근을 시켜 공장을 돌리고 있다” 고 말했다.

 A사의 현실은 국내 중소기업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년층이 취업을 기피하니 숙련된 기존 직원의 몸값이 올라간다. 중소기업의 고용은 갈수록 줄고 있는데 인건비 부담은 치솟고 있는 ‘고용의 역설’이다. 이는 신용보증기금이 9년간(2005~2013년) 은행대출을 보증해 준 중소기업(종업원 300명 미만) 137만2917곳의 고용지표를 분석한 결과와도 일치한다. 신보는 이를 토대로 개발한 신보고용지수를 활용해 앞으로 중소기업 고용 추이를 분석하기로 했다.

 이에 따르면 분석 대상 중소기업의 매출액 대비 고용규모는 2013년 10억원당 2.97명으로 2005년(10억원당 5.15명)에 비해 43% 줄었다. 매출이 늘었지만 직원 수는 늘지 않았거나 오히려 줄어든 기업이 많았다는 뜻이다. 실제 분석 기업의 2013년 평균 매출액은 89억5000만원으로 2005년(52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살아남은 기업이 파산한 기업의 사업영역까지 흡수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면 기업 한 곳당 평균 직원 수는 2005년 8.9명에서 2015년 8.7명으로 오히려 약간 줄었다.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일부러 직원 수를 안 늘린 게 아니라 신규 채용이 안 돼 못 늘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업들은 신규 채용이 없는 상황에서 매출을 늘리기 위해 기존 직원의 근무시간을 늘리고 월급을 올려줬다. 이렇다 보니 1인당 인건비는 2013년 5389만원으로 2005년(3880만원)보다 39% 늘었다. 이는 중소기업 고용난의 악순환을 그대로 보여준다. 청년층 구직자를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기존 숙련공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고 나면 막상 신규 고용 창출에 쓸 현금 여력이 소진된다는 얘기다.

 신규 채용을 못한 중소기업은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고용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교육 구조개혁을 통해 고등학교 때부터 중소기업 맞춤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적극 발굴해 청년 구직자와 연결시켜주는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다수가 대기업 협력업체인 점을 감안할 때 정부와 대기업이 함께 고용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의 동반성장기금의 차원을 뛰어넘어 중소기업 구직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금까지의 지원책과는 전혀 다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은 “중소기업을 지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좀비기업’을 정리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 중심으로 생태계를 조성하면 청년 고용이 자연스럽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지난달 취업자 증가 규모가 넉 달 만에 다시 20만 명대로 떨어졌다. 9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2614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25만6000명 증가했다. 월별 취업자 증가 규모는 지난 4월 21만6000명을 기록한 이후 5~7월엔 각각 30만 명대를 유지했다. 지난달 고용률은 60.7%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 하락했고, 실업률도 3.4%로 전년 동월보다 0.1%포인트 올랐다.

이태경 기자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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